생떽쥐베리/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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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 생떽쥐베리
인간의 내면에 건설한 향기로운 성채
류수안
*내가 보기에 인간은 성채와 아주 흡사하다. 그는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벽을 넘어뜨리기도 한다. 결국 그는 그 방이 무너지고 천장에 별이 보이는 성곽에 불과하다. 그때부터 존재하지 않는 데서 비롯하는
고뇌가 시작된다. 불타고 있는 포도 덩쿨의 향기나 털을 깎아주어야 하는 양으로부터 자신의 진리를 찾아내도록 진리는 우물처럼 깊이 파는 것이다.
시선이 산만해지면 신의 영상을 잃는다. 마음이 한곳에 집중되고 양모의 무게밖에 모르는 현인은 밤의 악 속에서만 마음이 개방된 간부보다 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성채여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다 그대를 건설하리라
향 주머니를 찢어 버리니 온 천지에서 향내가
난다
태풍 지나간 바닷가 모래는 이미 지나가버린 태풍의 흔적으로 굴곡져 있다. 물기 말라가는 모래 위엔 드문드문 조개들이 흩어져 있고 그
주위로 죽은 물고기가 검은 운석이 누군가의 신발 한짝이 놓여 있다. 어느 깊은 바닷속을 여행하고 돌아와 지금 저곳에 이르러 있는 것인가. 놓여
있는 신발짝에는 반쯤 물이 고여 있어 그 물에서 한낮의 해가 술통 속의 술처럼 붉게 익어가고 있는데 은빛의 바다도 그렇게 제 향 주머니를 활짝
열어 놓고 닫을 생각하지 않는다.
『성채(城砦)』의 첫 문장은 열려진 향 주머니 안의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열려진 향
주머니 안 바닷속의 산호가 어떻게 만월의 달빛을 먹고 꽃이 피는지, 유목민들은 어떤 방법으로 사막의 모래 속에 숨겨져 있는 우물과 소금덩이를
발견해 내는지, 열려진 향 주머니 안의 향내가 천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명상과 상상을 통하여 보여준다. 성채를 쓰기 전 생떽스는
친구에게 장편의 서사시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그런 만큼 성채의 전편은 서사시적인 운율과 시적 상징들로 가득차 있다.
생떽스
사후 출판된 미완성의 장편으로 앞의 몇 장을 빼고는 거의 초고 그대로 발표되어 작자의 내면을 더욱 생생히 보여주는 이 소설엔 줄거리가 없다.
단지 북아프리카의 어느 사막에 위치한 베르베르 왕국의 왕이라고 하는 화자인 ‘나’와 나의 대화 상대역으로 기하학자, 사령관, 전염병자 등이
등장하여 잠깐 나와 몇 마디를 나누고는 사라질 뿐, 줄거리도 없는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나’이다. 나의 말과 한순간도 멈추지
못하고 이어지는 나의 생각이다.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여 베두인 대상들에 의하여 구출되기까지 사막에서 보낸 며칠간의 체험이
바탕이 되어 씌어진 이 작품을 읽다보면 과연 인간의 상상력이란 어떤 것인가, 사물의 어디에까지 가 닿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솟아
오른다. 과연 생떽스라는 한 인간의 내부엔 미처 캐내지 못한 보석이, 발견해 내지 못한 광맥이 얼마 만큼 더 묻혀 있을 것인가 놀라움을 갖게
된다.
그 의문과 놀라움의 부분부분을 보자.
*나는 기하학자에 지나지 않아요. 어린애처럼 애써 말을 더듬거리면서 말을
찾아내는 사람일 뿐입니다. 진리는 좀처럼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군요. 나는 우주에서 신의 외투의 흔적을 발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마치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감춰져 있는 신처럼 하나의 진리를 만지면서 그 늘어진 옷자락을 걸어두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얼굴에서 베일을 벗어
버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 이외에 달리 발견할 무엇이 주어지지 않더군요.
벽시계의 먼지를 털어낸다. 먼지는 시계에서 떨어져 나와
공간으로 퍼져간다. 뜰의 꽃으로 지붕 위로 그러다 훌쩍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사라진다. 저렇게 우주를 떠돌다가 다른 먼지와 만나 별이 되리라.
별이 되어가는 순간의 먼지가 보고 싶다. 그 순간에도 벽시계의 초침은 멈추지 않고 다음 시간을 향해 움직여 가리라. 시계 숫자 위의 먼지를
털어낸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물을 통하여 읽는 얼굴을 알아보는 것이고 인식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은 신에 대한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연지와 조각돌과 시와 제국과 여인 또는 신이 인간들의 연민의 정을 통해서 그 전체적인 통일 속에서 잠시 그들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너에게 부여하였을 경우 네 마음속에 방금 열린 이 창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돌을 밀고 올라온다. 천년은 실히 그 안에
갇혀 있었던 듯 군데군데 깨어져 나간 활이 화강암의 검푸른 이끼를 떨어낸다. 누구인가, 저 돌 속에 활 새겨 넣은 천년 전의 그 사람은….
팽팽한 시윗줄 당겼다 놓으니 부르르 떨며 울리는 시윗줄의 소리.
너인가?
이제사 너인가?
*조각가를 관찰하라. 그는
자기 마음 속에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의 해골이 아닌 사람 속에 있는 것은 결코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각가는 그것을 진흙으로 빚은 얼굴로 옮기기 위해 반죽한다.
가슴과 양손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풀어내려 뒤틀린 모습으로 그
남자는 대지 위에 몸을 굽히고 있다. 내부로부터 터져나오는 고함 소리로, 긴장한 근육 위로 땀방울이 솟아올라 묶인 자의, 묶여 있는 자의 분노에
찬 눈꺼풀 위로 흘러내리고 있다. 남자는 그렇게 저 태고의 바위로부터 끌려나와 야외 조각 전시장 한켠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라는 제 이름표 아래 조각가 ○○○라는 신의 이름표를 함께 매달고.
*정오의 태양에 기력이 쇠잔한 사람이 별들이 빛나는
등성이에 올라서서 성스런 샘물의 침묵을 들여마신 것은 찾아온 밤의 비밀 속에서이다……그리고 영원이라는 위대한 진실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너보다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면 너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죽은자들을 존중하는 그 토착민들을 생각했다.
그곳엔 각 가정마다 묘석이 있어 묘석이 차례대로 죽은 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나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우리가 잠들게 될 곳을 알고 있는데 어찌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나요?”
바다 저편으로 사라지는 태양을 보았다. 나는 그
태양에게로 가는 지름길을 발견하려 모래 위를 헤매었다. 드디어 내가 태양에게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내 그곳으로 내달았을 때 태양은 황급히 검은
그림자로 내 앞을 막아섰다. 더이상 다가오지 마라. 이곳은 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태양이 들어가 잠들
어떤 방을 생각했다. 어둔 하늘에 푸르른 빗금 하나가 빠르게 태양이 사라진 바다 저편을 향하여 사라지고 있었다.
*삼나무의 살은
조약돌의 수액 속에서 얻어진다. 하이에나의 살은 영양의 살 속에서 얻어진다. 그러나 언어가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 언어는 결코
아무것도 결정짓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 때 너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내가 너를 표현하면 필연적으로 너는 나에게 속하게
된다. 왜냐하면 너의 언어는 나의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삼나무에 대해서 그것을 조약돌의 언어라고 말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조약돌은 언어를
통하여 바람의 속삭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면 그 누가 그 무엇을 이루어 놓을 나무를 네게 제시하겠느냐.
바다의 겉 표면은
물결이 만들어내는 주름으로 온통 뒤덮여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같다. 앞서 오는 물결은 다음 물결을 끌고와 바위를 뛰어 넘으려 공간으로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는 돌아간다. 물밑 저 왔던 길로 그렇게 되돌아가는 물결로 물의 표면 아래도 물 위처럼 주름져 있을 것이다.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물결이 되돌아가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면 그때 물은 어디에?
*만약 내가 사막을 향기롭게
하는 오아시스에 가까이 갈 수 없다면 나는 모래로 무엇을 할 것인가. 만약 야만적인 풍습과의 경계선이 없다면 나는 지평선의 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바람이 멀리 있는 비밀 회의에 소식을 실어다 주지 않는다면 내가 바람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모습을 볼 수 없는 물질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모래 위에 앉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사막에 관하여 말할 것이고 이 모습이 아닌 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너는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세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너 자신을 너의 내부로 옮겨가기를 바란다. 전체가 없이 부분만 있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거기 기다리는 자 없으면 지평선 넘어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시 지평선 넘어 되돌아올 때 기다려줄 자 없으면
홀로 지평선 넘어오기 참담한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한낮의 모래 위에 상어는 누워 있다. 깨끗한 등뼈 위 지평선 넘어가면서 보았던 다른 세계의
신비를 본 두 눈 그대로….
이제 상어의 뼈는 부서져 모래가 될 것이다.
뼛속에 남아 있던 적은 물기는 하늘로 갈 것이다. 신비한
두 눈은 모래 아래 바다로 가는 물줄기를 찾아내 거기 합류해 들어갈 것이다. 상어는 그렇게 제 생명의 원천이 되어갈 것이다. 그때부터 삼나무는
언제인가는 돌아올 오랜 친구인 그 상어를 위하여 기꺼이 제 그늘 한 켠을 비워두고 있을 것이다.
사막에 사는 어떤 뱀은 저녁
무렵이면 모래에 남아 있는 냄새만으로 이른 아침 제 짝이 지나간 길을 정확히 찾아내어 그 길을 따라 짝을 찾아간다고 한다.
『성채』엔 이
뱀들이 모래 위에 남겨 놓은 수많은 길들이 온갖 비유와 상징들로 표현되어져 있다. 모래 위에 드러내 놓고 혹은 숨겨 놓은 이러한 길들로서
셍떽스는 우리의 마음에 어떤 성채를 세우려 한 것인가, 세워 놓은 것인가. 어떤 이는 짝을 찾아가는 그 뱀처럼 제대로의 길을 따라 생떽스가
세우고자 한 그 성채에 이를 것이고 더러는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헤매기도 할 것이다.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그 길을 찾아내야 할 시점에
이르러 있다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그 길을 찾아내 성채에 이를 것인가.
올바른 길을 찾아내려 나는 내 손에 두개의 거울이 쥐어져 있다는
가정을 해본다.
거울과 거울은 아무리 가까이 세워 놓아도 거기엔 어느 정도의 분명한 ‘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 ‘틈’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안, 공포, 신비, 고통 등이 종합된 내 사유의 흐름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나의 거울을 치운다. 남아 있는 거울엔 지상
위의 사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거울을 통하여 보이는 그 사물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지금의 저 사물을 바라보기에
내가 서 있는 이 위치는 이 우주 속에서 참으로 필연적인 장소인가? 하나의 촛불이 우주 전체를 비춘다 하여도 내 눈이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겠기에.◑ (시인)
*생떽쥐베리의 『성채』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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