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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섭(사회․문학평론가․강원대 교수)
박민수(시인․춘천교대 교수)
송준영(시인․시와세계 주간)
1. 강원도
시단의 형성 과정
서준섭:강원도에
살지만 오랜만에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두 분을 모시고 강원 시단과 시의 현황과 문제점, 전망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문예지를 통한, 강원도 시 전반을 주제로 한 문학 좌담은 제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처음입니다. 먼저 이런
뜻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웹진『표현』 측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참석하신 두 선생님께서 평소에 생각해 오신 강원 시단에 대한 좋은 말씀들을 해주시리라고 기대합니다. 춘천의 박민수 선생님은 이른 시기에
등단하셔서 오랫동안 시를 써오셨기에 도내 시인과 시를 잘 아시고, 현재에도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시고 계시며, 강릉의 송준영 선생님께서는 시를
쓰시는 한편 최근 강릉에서 『시와세계』라는 시전문지를 창간하시어 시작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계시니, 두 분 선생님 이야기를 통해
강원시단의 현재 주소가 잘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영동, 영서 시인이 함께 자리하신 셈입니다.
오늘의
좌담 순서는 우선 강원도 시단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고, 이어서 강원도 시의 현황과 시의 지역적 특성이라고 하는 화두를 통해 주로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시인들과 그들의 시에서 어떤 지역적 특성이 발견되는지 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순서로 진행할까 합니다. 그 다음에는 현재 강원시단을 대표할
수 있는 주요 시인의 작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강원도에서 우리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여러 문화 환경의 변화 속에서
지역에서의 시 쓰기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 마지막으로 강원 지역 시단의 빛과 그늘이랄까, 문제점과 전망을 모색해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오늘
좌담을 원만히 풀어가기 위해, 먼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강원도 근,현대 시단의 형성 과정, 과거에서 현재까지 강원 시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개관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박민수:강원도를
중심으로 이른바 문단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정도의 시인이 등장하여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강원도는 시문학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향가 중의 「헌화가」가 강원도 동해안의 아름다운 바다와 산을
배경으로 한 것이고,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강릉 출신입니다. 또한 김시습과 김병연(삿갓)이 강원도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정철의
「관동별곡」도 강원도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노래한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의 강원 시문학을 살피는 것은 아무래도 1900년대 이후 현대문학의
발흥과 관련지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기왕
우리 시문학의 과거와 현재를 개관해 달라고 하셨기 때문에, 초점은 현재이지만, 현재를 이룩한 강원 시문학의 뿌리가 어떠한지를 살피는 것도 뜻있을
것 같아 잠시 1970년대 중반 강원 시문학 활성화 이전의 모습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강원
문학사에서 최초의 시인이라고 지칭되는 이는 잘 아시는 것처럼 1921년 경 『개벽』을 통해 문단에 나온 강릉 출신의 김동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강원도에 거주하며 직접적으로 문단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김동명이라는 시인의 이름이 강릉에서 비롯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훗날 강원 시문학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강원도 현대 시문학은 1920년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25년에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이 인제군 북면에 있는 설악산 백담사에서 창작되었다는 것이 특히 주목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용운은 강원도 출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동학 혁명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자 출가 입산하여 강원도 설악산 일대에서 불도를
닦으며 『불교유신론』 등의 집필을 통해 불교 개혁을 부르짖기도 하고 3․1 운동의 주역을 맡기도 하면서 마침내 우리 시문학 사상
불후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님의 침묵』을 백담사에서 창작하였으니, 이것은 현재의 강원 시문학의 중요한 뿌리의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조직되어 해마다 8월에 만해 축전을 백담사에서 열고, 1918년 만해 한용운이 발행하여 3집까지 나온
『유심』이라는 잡지를 강원도 중심으로 복간하고 있는 것도,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이 강원도와 밀접한 인과관계를 갖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강릉에서 발굴 작업이 한창인 심연수도 강원도 시문학의 뿌리를 말하는 데 한 몫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강릉 출신으로서 심연수는
중국 용정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반일 사상과 독립 사상을 고취한 저항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2000년 8월 8월 연변 출판사에서 발행한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에 312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최근 각종 세미나를 비롯, 관동대의 엄창섭 교수가 한국현대문학사를 집필하며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그의 시사적 위치를 조명한 바도 있습니다.
강원
시문학의 이러한 뿌리 맥락과 함께 강원 시문학사에서 관심을 둘 수 있는 것이 인제 출신의 박인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박인환은 해방 후 서울에서 동인지 『신시론』(1948)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이라는 5인 합동 시집에 참여하면서 서정적
모더니즘 시운동의 기수로 활동을 하였는데, 이것은 최근 강원도 출신 시인들이 서울에서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활동하는 것과도 긴밀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정황의 강원 시문학 뿌리가 하나의 강원 시문학의 양상으로 정착되기 시작하는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1년도에 강원도 최초의 동인지라고 할 수 있는 <청포도>가 황금찬, 함혜련 등에 의해 조직된 것도 매우 뜻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고, 1950년대 말 이희철이 춘천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신풍토』라는 사화집에 시를 발표한 일과, 이 무렵 여기에 영향을 받으며 장래의
모더니스트 이승훈이 춘천고등학교 학생으로서 열심히 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 주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인수라는 시인이 춘천교육대학 서무과
행정 직원으로 있으면서 『다목리』라는 시집을 발간한 것도 주목될 일이고, 1959년 이덕성 시인이 제1회 강원도문화상 문학부문을 수상한 것도
주목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 무렵 강릉에서 <관동문학회>가 조직된 것도 주목할 일이지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과 함께 강원도 시문학이 본격적으로 추진력을 갖기 시작하는 것은 1970년 이승훈이 춘천교육대학 국어과 교수로 부임해 오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시> 동인으로 주목을 받던 이승훈이 춘천에 거주하며 『시론』을 집필하고, 『사물 A』 등의 시집을 발간한 것은
모더니스트 이승훈의 역사적 자리매김과 한국 대표 시인의 한 사람이 된 최승호를 우리 시단에 내보내는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훈의 이러한 활동에 영향을 받아 최돈선, 박민수, 임동윤, 윤용선 등이 동인 <표현>을 결성하여 1970년 동인지 『표현』
제1집을 발행한 것도 주목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원
시문학은 이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1960년대 이전까지는 문학 불모의 땅이라고 할 수 있던
강원도가 지금은 현대시 중심으로 약 200명 정도의 시인군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시조시인, 동시인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시인들은 한국문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을 중심으로 하여 발간되는 문학지와 지역문학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제26집을 발행한 한국문인협회 강원도지회의 기관지 『강원문학』과 민족문학작가회의 강원도지회의 기관지 『강원작가』는
대표적인 문예지라고 할 수 있고, 춘천, 원주, 강릉, 삼척, 태백, 동해, 홍천, 화천 등이 계속 지역 문학지를 발행하고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인지의 발행과 시낭송회의 운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에 동인지 제1집을 발행하기 시작하여
10집까지 발행했다가 중간에 잠시 휴식과정을 가지고 있던 <표현>이 새로운 동인들로 결속되어 작년에 제14집을 발행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것이 주목되고, 춘천 중심의 시 동인지 『삼악시』도 작년에 19집을 발행하며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수
시동인지와 함께 지역별 문학회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데, 주목되는 것은 춘천 여성문학회, 원주문협으로 통합된 북원문학회, 강릉의 관동문학회,
속초의 설악문학회, 삼척 두타문학회, 태백 불뫼문학회, 횡성의 횡성문학회, 인제 내린문학회, 정선 아라리문학회, 영월 벗지문학회 등도 강원
시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춘천교육대학과 강원대학교를 중심으로 배출된 문인들의 활동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춘천교대를 졸업한 문인들은 <석우문인회>를 조직하여 10집의 문학지를 발행한 바 있고, 강원대학교를 졸업한 문인 모임인
강원대학교 문인회에서도 5집의 문집을 발행한 바 있습니다. 시낭송회로 대표적인 것은 춘천의 <수향시 낭송회>와 강릉의 <열린
시낭송회>, 속초의 <물소리 낭송회> 등이 수백회의 낭송회와 사화집 발간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다가 길어졌습니다. 언젠가는 강원도 문학사도 집필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겸사겸사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일들을 포함하여 대강의
흐름과 활동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주요 작가들의 활동에 대하여는 기회가 있으면 다음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서준섭:강원시단의
형성 과정을 파묻혀 있던 여러 자료들을 통해 차근차근 잘 정리해 주셨는데, 박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강원 시문학 역사의 윤곽이 한결 뚜렷하게
드러나는군요. 1920년대 근대 시단의 형성에서 1970년대까지 정리해주셨는데, 특히 70년대는 강원 시단의 틀이 잡히고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70년대까지 강원 시단은 시를 쓰는 시인들이 수적인 면에서 적었습니다. 몇 명밖에 없었지요. 시인들의 양적 증가는
80년대 이후라고 생각되는데, 송선생님이 이 부분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송준영:이승훈
시인이 1970년 춘천교대 교수로 재직하며 최초로 이외수, 최돈선,송준영, 이후에 최승호, 김혜순, 박찬일, 이낙봉에게 현대시를 가르쳤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또한 중고등학교를 원주에서 나온 오탁번 시인도 중요한 강원도의 시인이며 황금찬, 이성교, 함혜련, 원영동, 강우식 시인이 강릉에
영향을 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승훈에게서 영향을 받은 이언빈, 신승근, 박기동은 강릉의 박용재, 이홍섭, 함태숙 등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저
같은 경우에도 이승훈 선생에게 교육받아 김학주, 김미정, 강미영, 전현실, 김기준 등을 양성한 바 있습니다. 또 강릉 출신으로는 박용하,
심재휘, 박해람, 정선 출신으로는 박세현, 성미정, 박정대 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영월 출신으로는 고진하, 이재훈, 위승희, 평창 출신의
이영춘, 속초 출신의 함성호 등이 역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강원도 출신 시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원
지역에 거주하면서 등단하여 문학활동을 한 시인은 1960년대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빠르게 생각되어 지는 것이 강원도에서 순수하게
자생한 최돈선 시인이 1970년에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릉에 거주하는 시인들로는 박명자, 엄창섭, 조영수, 장병훈,
이충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현재는 관동대학 사회교육원이 생기면서 지역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제가 사숙으로 운영하는
대관령시인학교에서도 몇 명의 시인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서준섭:강원도
시단의 역사와 계보가 한 눈에 조망되는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강원 시단의 형성에 대학교육기관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강원도에
4년제 대학이 생기기 이전에는 춘천과 강릉의 사범학교에서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었지요. 임교순 선생을 비롯한 이분들은 주로 아동문학, 시조,
동시를 썼습니다. 이분들에 의해 시작된 강원도 아동문학은 사범학교가 교육대학으로 개편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고, 지금 큰 발전을 이룩하여
강원도에는 아동문학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70년대에 와서 강원대, 강릉대, 한림대, 상지대 등의 4년제 대학에 문과가 생기고 여기서
여러 문인들이 배출되어 강원 시단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지요. 60년대 근대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서울에 유학갔던 사람들이 문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던 사실도 고려해야 합니다. 70년대 초에 개통된 영동고속도로는 변화하는 강원도 문화환경의 중요한 지표의 하나라 할 수
있지요.
2. 강원도
시의 현황과 시의 지역적 특성
서준섭:강원도
시단의 역사를 바탕으로 이제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강원 시단의 여러 시인과 이들의 시에 나타나는 지역적 특성이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강원도 시에 다른 지역의 시와 다른 지역적 특성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일까 하는 점이 궁금한데, 이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현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의 현황, 강원 시단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의 지역성 문제는 이들 시인의 작품을
전제로 한 것이니까요. 이번에도 박선생님이 먼저 이야기 해주셨으면 합니다.
박민수:앞에서
강원도 시문학의 역사와 현황을 말씀드리는 과정에서 강원도의 시인이 약 200명 정도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들 200여명의 시인들은 이제
갓 문단에 데뷔한 신인도 상당히 많고, 활동을 중단한 시인들도 많이 섞여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수준에서, 활동이 활발한 시인들의 수는 대략 60여명 정도가 됩니다. 좀 장황하지만 그 명단을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역과 도내 거주 여하를 떠나 가나다순으로 말씀드리면. 강우식, 고경희, 고진하, 고형렬, 구영주(작고), 권준호, 기정순, 김금분, 김남극,
김동명(작고) 김성수, 김완성, 김재룡, 김진광, 김창균, 김학주, 김학철, 김홍주, 남진원, 마종기, 민영, 박기동, 박명자, 박민수,
박세현, 박유석, 박영희, 박용하, 박인환(작고), 박일송, 박재릉, 박종화, 박찬일, 박화, 성덕제, 송준영, 신승근, 심상운, 심재교,
양승준, 엄창섭, 오탁번, 원영동(작고), 원태경, 윤용선, 이구재, 이덕성(작고), 이상국, 이성교, 이성선(작고), 이승훈, 이영춘,
이은무, 이충희, 이홍섭, 임동윤, 장병훈, 전태규, 정연수, 정연휘, 정일남, 정태모, 조성림, 조영수, 최계선, 최돈선, 최명길, 최승호,
한승태, 함혜련, 허림, 홍승자, 황금찬 등입니다. 이들 중 강우식, 고형렬, 김재룡, 마종하, 민영, 박재릉, 박찬일, 심상운, 오탁번,
이승훈, 임동윤, 정일남, 최승호, 함혜련, 황금찬 등은 중앙 문단에 뿌리를 박고 우리 나라 대표 시인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시인들은 모두가 독자적인 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시인들의 지역적 특성을 개별적으로 말씀 드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숫자가 많고, 개별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얘기가 길어져 다음 기회에 이어서 말씀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송준영:영동지역의
시적배경은 황금찬, 이인수, 이성교, 함혜련 등의 영향을 받아 영동지역내에 자생한 시인집단과 춘천에서 이승훈 선생의 영향을 받아 강릉에서
활동하고 있는 집단이 있습니다. 전자에는 엄창섭, 장병훈, 박명자, 이충희, 이구재 등이 속하며, 후자에는 신승근, 이언빈, 송준영 등이
속합니다. 그 외에 심재상, 박용재, 박용하, 이홍섭, 김선우, 김학주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한 심재휘와 위승희, 박해람, 이재훈, 안현미,
함태숙, 김미정 등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시인으로 주목할 수 있습니다.
서준섭:두
분 선생님이 강원도 지역에 현재 어떤 시인들이 시를 쓰고 있는지 영동, 영서로 나누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밖에도 철원의 민영, 원주의
장영수, 작고한 춘천의 진이정 등의 시인들의 이름도 거론해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진이정은 중요한 시인이지요. 90년대 초 진이정은
서울에서 「21세기전망」 동인을 조직하고, 동인지를 발간했는데, 이 동인지는 당시의 가장 중요한 동인지 중의 하나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동인들은 당시 시단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어 시단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른바 신세대 시인의 등장을 알린 동인지였지요. 이 신세대 집단에는
춘천의 진이정, 고성의 함성호, 강릉의 박용하를 비롯하여 유하, 함민복 등, 당시 가장 재능있고 촉망받던 시인들이 대거 참여하였는데, 그 주축이
진이정을 비롯한 강원도 출신 시인입니다. 이들은 현대 우리 시단의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인구가 적고 험한 산이 많고 대도시가 없고(춘천, 원주 강릉 등의 도시 인구가 약 25만명 정도), 산업 기반이 다른 지역에 비해 취약해서,
도시화, 산업화 시대를 거쳐오면서도 그것을 다른 지역에 비해 피부로 덜 느꼈던 지역이라 할 수 있지만, 지역 주민 역시 격동의 현대사를 함께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말하자면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특이성,
특수성을 강조하느냐 보편성을 강조하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라 하겠는데, 어느 경우로 보든 강원 시단은 우리나라 시단의 큰 흐름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고 봅니다.
강원도
지역 시인의 시에 나타난 시의 특성은 대체로 1) 자연과의 친화, 또는 순수 서정의 탐구, 2) 사회와 역사적 현실에 대한 관심, 3) 자아와
일상생활의 시적 탐구 등인 것과의 결합 등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경향적 특성은 그대로 현대시의 일반적 특성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강원도의 자연과 향토를 노래하는 이성선, 이무상을 비롯하여,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를 쓰는 박민수, 최돈선, 신승근, 이언빈 등이
모두 1)에 속합니다. 이성선의 시는 물론이고 80년대의 이언빈 시집 『먹황새 울음 소리』는 순수 서정시의 한 경지를 보인 것입니다. 2)
사회, 역사적 상상력의 시인으로는 80년대 『해청』, 『사진리 대설』 시대의 고형렬과, 『우리는 읍으로 간다』 이후의 이상국과 같은 고성, 속초
지역의 시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속초 지역은 지역적으로 인공치하를 경험한 곳으로서, 휴전선에 접해있는 데다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그곳 시인들의 시쓰기에서 이런 지역적 특성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춘천의 이은무, 김홍주, 권혁소 시인도 크게 보아
이 계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3)의 시인으로는 박기동, 장승진, 김선우 등을 들 수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시가 여기에 속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모더니즘적인 것과 리얼리즘적인 것으로 분류하자면, 박인환 ,이승훈, 함성호, 성미정 등의 시가 모더니즘적인 성향이 강하고, 고형렬,
이상국의 시는 리얼리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여성 시인들의 경우는 여성성의 탐구가 중심적 관심사로 나타난다는 점은 다른 지역과
같습니다. 강원도 시를 이렇게 몇 가지로 대별하는 일은 도식적인 점이 없지 않습니다만,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강원도 시는 지역성과 한국적 특성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시의 지역성이라 하면 보편성보다 강원도적인 것, 자연과의 친화, 향토성, 서정성 등을 더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사실 2)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가 순수 서정이지요. 강원도 시의 지역적 특성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송준영:강원도에
거주하는 시인이 대체로 아름다운 자연과 인구밀도가 낮아서 자연 인간과 인간이 덜 부딪치는 관계로 자연친화적인 면이 강합니다. 따라서 소박,
단순, 순수하며 바깥 영향을 덜 받는다는 측면에서 엄창섭 교수는 강원도의 시적특성을 ‘은둔과 폐쇄’, ‘소박과 단순’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특이하게 강원도는 ‘소박과 은둔’으로 말해지는 지역성에서 형성된 듯한 토속 서정적인 사유와 그것을 표현한 스타일의 시와 또 매우 실험적이며
모더니티한 사유에 의한 수사적 표현, 이렇게 두 가지로 분류되어 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강원도의 시인들은 어째든 충분히 많은 시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박민수:강원도
시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말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에서 여러 시인들을 열거했습니다만, 이들의 시는 모두가 전통적 리리시즘과
모더니즘, 리얼리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강원도 시인들의 경향으로 특성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의 보편적 분류가 이에 해당되고, 강원도 시인들도 이러한 분류의 갈래 속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강원도
시문학은 몇 가지 두드러진 양상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도내에 거주하며 시 창작 활동을 하는 그룹과 밖에 나가서 활동하는 그룹에
두드러진 차별성이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즉 도내에 거주하는 시인들이 대부분 전통적 리리시즘의 경향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밖에 나가서 활동한,
또는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은 두드러지게 모더니즘적인 것과 리얼리즘적인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강원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들이 모두 전통적 리리시즘의 경향을 보이고, 밖에 나간 시인들이 모두 모더니즘이나 리얼리즘의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940년대 후반부터 활동한 박인환이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고, 1960년대부터 서울에서 활동한 이승훈이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매우 주목되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최승호, 박찬일 등의 활동은 우리 강원 시문학의
한 경향을 잘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제시대 때에 용정에서 활동한 심연수나 철원 출신의 민영, 속초에서 자란 고형렬의
시들도 우리나라 리얼리즘 문학의 한 갈래를 이루는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원도에 거주하며 강원 시문학의 한 흐름을
주도한 시인들의 대부분은 전통적 리리시즘의 경향을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2000년에 작고한 이성선의 시는 아주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등장하는 시인들의 시는 이러한 리리시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특히 강원도에 거주하는 시인들의 리얼리즘적 경향은 다른 시도에 비하여 좀 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얼마 전 민족문학작가회의
강원도지회가 결성되어 물꼬가 열리고 있음을 느낍니다만, 강원도 시인들의 시가 리리시즘에 기울어 있는 것은 지역적 특성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서준섭:리얼리즘이
부족하다는 것은 중요한 지적입니다. 그것을 지역성의 일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역시 지역의 인문지리적 특성에 따른 사회,
문화적 특성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산골 마을에서 살고 있고 마을이라 해도 넓은 평야지대가 아니어서 몇 십호의
가옥들이 있고 인구도 적어요. 도시라는 것도 적고 또 서로 멀리 떨어져 산맥들로 격리되어 있어요. 그러니 외부와 서로 소통한다든가 세상 돌아가는
물정과 정보에 뒤쳐지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지금은 모든 지역이 자동차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었고 교류도 활발한 편이지만 ― 어쨌든
리얼리즘의 시정신의 상대적 결여 현상은 이 지역 시의 중요한 특성이라 할만합니다. 반성해야 할 점이지요.
모더니즘적인
분위기는 강하다고 봅니다. 특히 서울과 가까운 춘천 쪽이 그렇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춘천은 자연에 가까우면서도 주변의 안개로 뒤덮이는
도시의 분위기라든가 뒷골목의 카페나 술집의 내부 장식, 음악 등의 분위기는 상당히 모던한 데가 있어요, 이승훈의 모더니즘은 춘천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영향도 남아 있어요. 문화적 차원에서 신흥도시라 할 수 있는 춘천에서 이런 모던한 경향은 연극제, 마임축제 등의 현대적
문화활동과 맥을 같이 합니다.
3.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시인들
서준섭:한
시인이 성장과정에서 얻은 체험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강원도에서 성장한 시인을 강원도 시인들이라고 하지만 이 시인들도 자세히
보면 다양합니다. 강원도에서 성장한 시인들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한 경우와 현재 강원도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고,
그 외에 다는 곳에서 성장했지만 강원도에 정착한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지하, 고형렬의 경우처럼 한동안 지역에서 왕성한 창작
생활을 하다가 아주 떠난 분도 있고, 최승호(시집 『반딧불 보호구역』 시절의 최승호)의 경우처럼 귀향하여 한동안 고향에 머물며 시를 쓰다가 다시
떠난 시인도 있으며, 현재 경기도에 있지만 자주 춘천에 나타나서 함께 어울리는 박용하(양평 거주) 시인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하지는
않습니다만 현재 강원도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의 시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어 보겠습니다. 이 시인들의 시가 강원도 시의 현재다
라는 관심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요. 현재의 강원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들 중에 대표적인 시인들을 중심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민수:앞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강원도 시인들을 일일이 평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자께서는 그래서 대표적인 시인들을 검토해 달라는 주문을 하셨는데,
사실 어떤 시인들을 대표적인 시인으로 분류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여전히 출향 시인들 몇
분들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승훈, 최승호를 들 수 있습니다. 제가 이들 시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이들이
강원도라고 하는 지역적 특수성을 뛰어넘는 모더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더니즘 시가 우리 시대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들 시가 지역적 리리시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시의 방법론에 도전하는 그 근성
때문입니다. 우리 강원도 시인들에게는 이러한 근성이 좀더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두 시인은 많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좀
숨겨져 있는 시인들 중심으로 몇 사람을 거론해 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젊은 시인들 중심으로는 평론을 하시는 서준섭 교수께서 해 주시리라 믿고, 또 동해안 중심으로는 송준영 주간께서 해 주시리라 믿어 춘천, 원주
중심으로 몇 사람을 말해 보겠습니다.
저는
최근 원주의 양승준 시인이 낸 『영혼의 서역』이라는 시집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앞에서 제가 강원도 시인들의 보편적인 특징이 전통적 리리시즘에
기울어 있다고 하였는데, 우선 양승준 시인은 이러한 지역적 리리시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상상력을 창조해 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사막의 낙타를 상상력의 동적 매개로 삼으면서 슬픔과 영혼의 문제를 표출하고 있는데, 상상력의 새로운 영역 창조라는 면에서 그의 도전적 창작
자세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춘천에 권준호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얼마전에 『고로쇠 노동조합』이라는 시집을 상재한 바 있는데, 확트인 시적
화법들이 특히 주목되는 것이었습니다. 황미라 시인도 주목되는 바가 있습니다. 황미라 시인은 『두꺼비집』이라는 시집을 낸 바 있는데 상상력의
치밀함과 시적 구조의 탄탄함이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최근 『지상의 편지』라는 시집을 출간한 조성림 시인도 주목됩니다. 수학 교사인데, 시적
상상의 세계가 넓게 펼쳐지고, 어법의 치밀함이 주목되는 바가 있습니다. 아직은 중앙 문단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폭넓은 독자 확보 면에서 갈 길이
바쁜 시인들이지만 좋은 시들을 많이 창작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송준영:영동
지역에서는 강릉을 중심으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릉 시인들은 향토성 강한 시적바탕을 갖고 있는 조영수,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엄창섭, 건조하고 지적인 시를 쓰는 모더니즘 성향의 심재상,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이홍섭, 생활 속의 깨우침을 시로 표현한 박명자와
이충희, 서정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김학주, 우리 내면을 따뜻한 언어로 잡아내는 김미정 등으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서준섭:제가
보기에 현재 시작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시인들은 아주 많습니다. 춘천의 <수향시 낭송회>만 해도 지역 시인들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모여서 정기적인 시낭송회를 개최하고 있지요. 최근 180회째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 자리를 통해 신작들을
발표합니다. 속초, 강릉에도 비슷한 시낭송 모임이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거론하기보다는 지역별로 생각나는 시인들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면, 춘천의
이무상, 이은무, 박민수, 김은자, 박기동, 최계선, 이홍주, 서경구 등과, 원주의 고진하, 박세현, 양승준, 김선우 등의 시인을 들고
싶습니다. 강릉쪽에는 송준영, 엄창섭, 신승근, 이언빈 등이 있고, 속초에는 이상국, 박종헌, 김창균, 평창에는 김남극 시인이 있습니다.
이영춘, 고경희, 김금분, 황미라 등의 여러 여류 시인들의 활동도 활발합니다. 그 중에서 이 시인이 강원도의 대표적 시인이다 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범위에 한정하여 독후감 수준에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우선
강원도의 중요한 시인으로서 이상국을 들고 싶습니다. 이시인은 『동해별곡』,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등 네 권의 시집을 내고
있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속초라는 지역성을 바탕으로 리얼리즘적인 시를 꾸준히 써오고 있습니다. 그의 시들은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속초 지역 토착민들의 생활과 정서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그곳 주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여러 일상생활과 생활의 정서를 생생하고 힘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속초 지역을 중심으로 한 농경 사회의 기억과 분단과 근대화, 산업화 이후의 일상생활과 감정의 변화를 구체적이고
서정적인 언어, 주민들의 일상언어로 표현해오고 있는데, 비슷한 지역의 생활 정서를 노래한 고형렬의 속초, 고성 시대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고시인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최근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를 보면 그의 시적 관심사가 지역에서 사회와 자연 쪽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선불교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며 선취가 풍기는 시도 발표하고 있습니다. 백석이나 신경림의 시처럼 이야기시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으나 그 이야기와 화자가 표현하는 생활과 감정과 언어가 속초지역의 독특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시인은 아주 강원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진솔하고 사실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시들은 그 표현이 소박한 편이지만, 시집을 읽어보면 동해 바다와
같은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젊은
시인으로는 김선우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랭보의 말대로 시인이란 ‘견자(見者)’인데, 김선우의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은 바로 이런 견자의 탄생을 보여주는 시집입니다. 이 시인의 시적 재능은 예를 들면 “벌집 소의 달마”와 같은 시구 속에 잘
나타납니다. ‘벌집’ 속에서 ‘달마’를 보고 표현하기란 ‘순간의 시학’이라 할 수 있지요. 언어, 감각, 표현 모두에서 시적 순발력과 재능이
발견됩니다. 그의 관심사는 禪, 자연, 가족, 역사, 사회, 사랑 등 다양하며 아직 어느 하나로 응고되거나 굳어 있지 않습니다. 신인으로서 큰
성장과 문학적 진전이 기대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의 시에는 캄캄한 어둠 같은 것이 여전히 남아 있고 산문도 잘 씁니다. 기대를 걸어볼만한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원주 문막에서 살며 문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춘천은
시의 뿌리가 깊고 시인도 많이 있지만, 박민수 선생은 그 중에서도 일찍 등단하여 여러 권의 시집을 냈고 현재에도 꾸준히 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나온 시집 『낮은 곳에서』는 박시인의 오랜 시작 생활의 중간 결산적인 의미를 지니는 시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아의 정체성과 순수
서정의 탐구는 그의 지속적인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집에 이르러 박시인의 시적 관심사는 한결 넉넉하고 풍요로운 언어로 표현되면서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인생과 사물을 어린이와 같은 천진하고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자아와 세계와의 어떤 화해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언어도 투명해져서 이전의 마음의 어떤 갈등 같은 것이 사라자고 있지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박시인의 ‘정신적 귀거래사’로 볼 수 있는
시집입니다. 이 시집에는 풀과 꽃과 산과 강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가 풍부하게 등장하고 있고, 인간과 자연간의 순수한 서정적 교감이나, 자연에
대한 경이감을 노래한 작품이 많습니다. 그리고 최근 시들, 예를 들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최근호에 발표된 시를 보면, 형식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어와 사유 양면에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시인데, 호흡이 길고 길이가 긴 사설조의 시들입니다. 이 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어떤 세계를 보여줄지 궁금해집니다. 춘천에서 꾸준히 시를
쓰고 있는 시인으로 박민수 선생 외에도, 시집 『내 몸이 동굴이다』로 잘 알려져 있는 박기동과 최근 『고로쇠 노동조합』이라는 시집을 낸 신인
권준호를 거론하고 싶습니다. 30년이 넘게 시를 써온 박기동은 일상생활의 사유들을 시로 표현하면서 시와 삶을 대질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시적 초월과 자유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그의 지속적인 관심사입니다. 권준호 시인은 아직 언어가 거친 면이 있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적인 시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시인이라 생각됩니다.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의 고진하 시인과 『정선 아리랑』의 박세현 시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강원도 시인입니다. 강릉을 거처 현재 원주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고시인의 작품은 기독교적이기보다는 선적인 풍취가 강하고 자연 친화적이며 그 언어가 활달하고 자유롭습니다. 박세현(본명 박남철)은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냈지만 『정선 아리랑』은 정선 지역과 주민의 토착적 생활 세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시집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합니다. 자기가 잘 아는 세계, 다른 시인이 노래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은 시의 본질과도 상통하는 것이지요.
시인이란 그가 어디에 살든지 자기 자신을 통해 삶을 노래하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과 다른 자기만의 절실한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송준영
선생은 첫 시집을 낸 후 한동안 시에서 멀어졌다가 최근에 다시 왕성한 창작활동을 재개하시고 계십니다. 최근의 시지에 작품 발표를 많이 하고
있는데, 앞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리라 기대됩니다. 송시인의 시는 순간 순간을 하나의 이마쥬로 포착하는 시로서, 언어가 활달하고 거침이 없고
힘이 있어요. ‘순간의 시학’, ‘찰나의 시학’이라 할 수 있는데 선불교에 대한 남다른 관심 때문인지 작품에서 깊이가 느껴집니다. 젊은이 못지
않은 힘찬 시를 쓰고 있다고 봅니다. 강릉의 심재상 시인은 과작이지만 새로운 실험하고 있는 시인입니다. 근대성의 담론과 관련된 모든 이분법을
넘어선 서정시, 역사의 상처라든가 분별심을 넘어선 사물과의 순수한 접촉과 그 접촉 순간의 시적 표현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자연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도 지니고 있는 시인입니다. 한국시의 새로운 차원을 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기대되는 두 신인에 대해 언급해야겠습니다. 『심상』지로 나온 김창균과 최근 『유심』지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남극이 그들입니다. 이상국 시인이
분단의 일번지 속초 지방의 정서에 시작의 기반을 두고, 춘천의 이무상 시인이 춘천의 향토적인 세계에 뿌리박은 시를 쓰고 있다면, 김창균, 김남극
두 시인은 그들의 고향인 강원도 영서 내륙지방(평창군 진부 지방)의 독특한 생활과 정서에 시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시인의 시세계는 서로 다릅니다. 김창균이 “생솔가지로 군불을 지피는” 고향집의 기억과 선에 바탕을 둔 서정시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면, 김남극은 오대산 심산에서 나는 ‘곤드래 나물’을 먹으며 성장한 영서 산간 마을의 기억과 정서와 감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런 산간
원주민의 정서는 한국시에서 새로운 것입니다. 김창균은 멀지 않아 첫 시집을 낼 것으로 예상되며, 김남극은 오랜 습작기의 경험과 시에 대한 남다른
정열을 소유하고 있어서 이들의 활동이 강원 시단에 적지 않은 활력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들은 현재 『강원작가』를 통해 꾸준히 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4. 강원도에서
시쓰기의 의미
서준섭:강원도
지역시의 현재에 대한 개관을 마치고, 이제 화제를 바꿔서 강원도에서 시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강원도에서 시쓰기란
무엇이며 어떤 보람과 고충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지역 시를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지역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인의 입장에서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민수:앞에서
강원도 시인들이 200여명에 이르고, 약 60명 정도의 활동이 활발한 시인들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특히 강원도에 거주하는 시인들의 고뇌가
더욱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강원도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 바로 그 특수한 환경 속의 강원 시문학은 스스로
변별성을 통해 이른 바 ‘세계화’ 지향의 노력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도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이 큽니다만, 앞으로 성장하는
시인들을 통해서는 강원도의 정체성이 여러 측면에서 탐구되고, 그것이 시화되어 한국이, 세계가 주목하는 ‘강원도 시인군’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 이런 면에서 최근 송준영 주간이 앞장서 발행한 『시와시계』는 앞으로 큰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송준영:강원도
내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들이 80~90년대에 들어와서 세계화, 정보화지형에 원활히 참여하지 못하고 시적 사유가 이전시대에 정체되어 있는 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도 내지 시인 상호간에 보다 적극적인 소통구조를 위하여 유통의 장을 개발한 것이 본인이
주관하고 있는 『시와세계』입니다. 강원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시인들의 보다 치열한 장인정신과 수사법적 탐구정신, 시적 사유의 힘이 기대됩니다.
서준섭:모든
시쓰기란 자기의 위치에서의 시쓰기입니다. 자기 삶의 지평 안에서 자신의 삶과 마주하면서 삶의 테두리를 이루는 잡다한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시를
쓸 수밖에 없지요. 누가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사는가 하는 문제 특히 출생의 문제는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한, 다분히 운명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장소의 선택도 그런 점이 있지요. 강원도적인 독특한 인문지리적 환경, 사회문화적 환경은 강원 지역 거주 시인의 일상생활과 시작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지역이나 그 지역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시를 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독특함을 차이라 한다면
삶도 시도 차이라 할 수 있어요. 각자의 위치에도 차이가 있어요. 모든 글쓰기가 그렇듯 시쓰기란 이런 특이한 자기 자신의 삶과 언어의 대질이며
이 차이는 문학에서 중요한 자신이기도 합니다.
들뢰즈는
“예술이란 개념 없는 특이성(독자성)의 반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특이성이란 차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언어와 예술의 생성은 개체의
바깥이나 초월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안에서 생성되는 것이지요. 들뢰즈가 말하는 ‘내재성의 구도’가 그것이지요. 우리
시대의 시쓰기에서 이런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70, 80년대의 민주화 운동 시기 동안 시인의 삶의 바깥으로 향했던 시들이 속속
시인 자신의 삶 속으로 회귀하고 있는 현상에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90년대를 거쳐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시가 시인 자신의 삶 속으로
귀환하고 있는데, 이는 각자의 시 자체로의 회귀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대면은 모든 시의 근본적인 동력이라 하겠는데 강원도 지역의
대부분의 시인들은 과거부터 그렇게 시를 써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회 분위기의 상대적 안정은 시대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좀 둔감한 점이
있는 강원 지역 시인의 시쓰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시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쓰기에 대한 각자의 태도라고 봅니다. 정말 더 나은
시를 쓰고자 하는 각오가 있는가, 시를 위해 자신의 삶을 걸 각오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환경 탓만 하지 않는, 시인으로서의 전문성의 재고가
중요합니다. 훌륭한 시들은 언제나 그런 시인들에 의해 쓰여져 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박민수:같은
맥락에서 강원도 시문학이 한국 시문학의 창조적 주도력을 갖느냐, 그리하여 자기 존재를 새롭게 만드는 치열한 도전 의식을 갖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시인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들은 중앙 문단의 창조적 주도력의 그늘 밑에서 아류로서 파묻혀 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아주 기분 나쁜 일이지요. 몇 시인들이 중앙 무대에서 창조적 주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강원 시인의 저력으로, 이
어지러운 시대에 꿈이 되고 사랑이 되고 정신이 될 많은 좋은 시가 창조되었으면 합니다.
5. 문학
환경의 변화에 따른 강원 시단의 전망
서준섭:강원
지역 시단은 최근 들어 적지 않은 문학적 환경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교통망이 확충되어 2시간이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로 교류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셈이지요. 그리고 문학계에도 두 가지 변화기 있었습니다. 첫째 백담사의 만해축제를 비롯하여,
봉평의 이효석문학제(이효석문학관 개관), 춘천의 김유정문학제(문학관 개관) 등의 문학축제가 개최되고, 인제의 박인환문학상, 영월의 김삿갓
문학상의 제정에 따라 각종 문학행사가 개최되기 시작하면서, 이 행사를 통한 지역 문인 간의 교류, 지역과 외부 시인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둘째 지역에 근거를 둔 몇 개의 문학잡지가 새로 발간되었습니다. 한용운이 주재했던 『유심』지의 복간(2001), 민족문학작가회의
강원도지부의 기관지 『강원작가』의 창간(2000), 시전문지 『시와세계』의 창간(2003) 등이 그것인데 이는 지역 시인들에게 문학활동을 펼 수
있는 매체들이 확충, 확대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몇 가지 변화가 강원도 시단과 시인들의 창작에서 어떤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문화 환경의 변화가 시쓰기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잡지 발간이 강원 시단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송준영:실질적으로
강원도에서 나타나는 수사법과 시적 사유가 전국적으로 통용되는가에 대해서는 낙관할 수 없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소통의 일환으로 『시와세계』를
창간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도내외적 시적교류가 풍부해지며 시인 각자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전망할 수 있습니다.
박민수:저는
강원 시문학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기대감을 갖습니다. 강원도는 21세기의 매우 중요한 정신적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흔히
‘순수성’이라는 말로 좀 부정적인 평가를 해 왔습니다만, 강원도의 자연 현상과 인간의 정신, 이 둘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모색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상상력, 그리고 21세기 물질의 사회를 용해시킬 새로운 리리시즘의 창조, 이런 것들을 구체적 창조 원동력으로 삼는다면 그야말로 세계를
놀라게 할 시가 강원도 시인들에 의해 창조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강원대학교 등 지역내 대학에서의 문학교육의
활성화도 아울러 요구해 볼 수 있습니다.
서준섭:저는
최근의 여러 문화 환경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이 변화가 강원시단에 어떤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강원 문단이
활성화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행사를 통해서든 잡지 매체를 통해서든 시인들의 모든 만남은 창조적 정신의 교류와 자극의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류야말로 강원 시단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자기 지역에만 안주하지 않는 적극적인 교류의 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강원도
지역 시단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적 자극의 부족이 아닌가 합니다. 사는 일이 다 그렇지만 창작에서는 특히 이 자극이 중요합니다.
정지되어 있고 흐르지 않는 정신은 침체되기 마련이지요. 새로운 시인과의 문학적 만남, 강원도 이외의 거주 시인과의 빈번한 만남, 창조적인
시정신의 교류는, 잠재되어 있는 각자의 시적 창조력을 일깨우고 그것을 자극하고 활성화하여 새로운 시적 영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교류는
이른바 지역 시인과 출향 시인들 사이에서도 자주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두 분께서 이미 지적하신바 있지만 강원도는 재능있는 시인들을 많이
배출했어요. 이승훈 선생을 비롯하여 최승호, 박용하, 함성호 등등의 쟁쟁한 시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잡지는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편집과 운영도 중요합니다. 좋은 기획이 있어야 하고 폭넓은 발표의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잡지의
운영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지역 문인들이 적극적으로 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최근의 문학 환경 변화가 지역 시인들의 시쓰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강원 시단의 문제점과 전망에 대한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강원 시단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를 간단히 요약해보면, 대체로 강원도 지역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 산업화, 정보화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체되고 침체된
지역으로서 이런 지체 현상은 지역 시단과 시인의 시에도 어느 정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지체 현상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 시의 흐름에 다소 둔감하고 자극이 부족하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시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전반적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는 여전히 시를 진지하게 대하고 열심히 시를 쓰고, 또 앞으로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은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일례로 강원대 출신의 문인들의 수가 약 50명 되고, 그 중의 35명 정도가
시인인데 이들은 대개 대학에서부터 문학활동을 했고 그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뒤를 따라 시를 쓰면서 시인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이 있어요. 이들 기성 시인, 작가들의 연령이 삼사십 대입니다. 이 연령으로 보면 이들의 문학이 아직 생애의 정점에 이르렀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이들이 장차 한국문단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큰 줄기를 이룰 것이라 기대되는데, 이런 기대는 그대로 강원 시단의 전망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역 출신으로서 지역에서 거주하는 시인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시인들도 많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지요.
지역 거주 시인이라는 한정된 시각을 넘어 범문단적으로 보거나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강원도 지역은 한국시의 장래에 밝은 빛을
던져주고 있는 지역이라고 봅니다. 강원도는 상당한 문학적 잠재력을 가진 지역입니다. 다만 지적하자면 문단적 결속력과 도시적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생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한국시의 발전을 위해 강원도 지역 시인들이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민수:앞에서와
같은 기대도 있지만, 비관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하고 있지만, 요즈음 초중등 학교에서의 문학 교육이 매우
파행적이라는 사실이 계속 확인됩니다. 문학 교육이란 인간 교육입니다. 창조적 상상력의 교육을 통해 인간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 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문학 교육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 교육이 지식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얼마 전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 “왜 시를 공부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모두가 “시험을 위하여”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지식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학 교육은 결국 문학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길러내는 결과가 되고 있습니다. 외웠다가 모두 잊어버리니까요. 문학 교육이 좀더 제대로
될 수 있도록 빨리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화되어 잠시 ‘죽은 시인의 사회’가 되어가는 느낌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야말로 인간의 물질화, 기계화를 막는 생명수와 같은 것입니다. 경제적 상품성에서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나, 시가 살아야
인간이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 쓰기에서 ‘낯설게 하기’란 곧 자동화되어 가는 인간에 대한 서정적 자기 회복의 목표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문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제게도 큰 책임이 있음을 동감합니다. 저도 시인으로서, 교수로서 요즈음
많은 반성을 하고 있고, 시 쓰기의 새로운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송준영:강원도의
시인들에게서 장인정신이 대체로 약하다고 우려할 수 있겠으나 긍정적인 것은 강원도 역사상 지금이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한국문학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점입니다. 1920~30년대 김동명, 40년대 박인환, 용정의 심연수, 50~60년대의 황금찬,
이승훈, 이인수, 강우식, 70년대 최돈선, 이성선, 이들의 뒤를 잇는 다음 세대는 피라미드 형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출향시인들의 왕성한
전국적인 활동을 통하여 다시 강원도내 거주시인의 활동에 자극을 주고 풍부한 교류를 통하여 강원도 시 발전에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서준섭:강원도
지역의 시의 문제는 한국시단 전체의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도 있고 지역이 한정된 것도 있습니다. 자체의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해
나가야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시란 언제나 시인 자신이 자기 위치에서 쓴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시인은 평범한 이 명제를 깊이 사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위기와 관련된 논의는 언제 어디서나 있어 왔습니다. 이런 논의의 이면에는 시에 대한 독자의 기대심리가 놓여 있습니다.
좋은 시는 지속적으로 읽힌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습니다. 좋은 시를 쓰려는 시인들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의 문제점은 시를 통해 해결하는
길 밖에 없고 그것은 시를 쓰는 시인 각자의 문제이지요.
강원
지역의 시에 대해 말한다면, 시인들이 관심을 너무 바깥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의 삶과 마을과 주변의 살아 있는 생명과 인간과 그 생태에 대해
적극적인 시적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삶의 순간 순간에 존재의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이미지와 언어를 시로 포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란 금방
쓰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그런 순간적인 느낌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시의 창조적 원천은 늘 그런 것들입니다. 다른 시인이 아닌 그 시인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연구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 시로 쓰여지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현실적 삶에 대한 충실은 모든 글쓰기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 아닐까 합니다. 시쓰기가 특히 그렇지요. 이것은 비단 강원도 지역에서의 시쓰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시쓰기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의 모색이지요. 우리 시대는 바로 시 자체로 시란 무엇인지 저마다 다시금 묻고 있고 또 그런 물음을 지속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좋은 말씀해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하며 오늘 좌담은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 준 『표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