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 첫시집 『단추』
생활제재에
인간사 대입, 삶의 원리 추출 독특
2000년
『자유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문숙 시인이 첫 시집 『단추』(천년의시작)를 펴냈다.
문숙의
시는 최근 문단에 발표되는 난해하거나 번잡한, 기괴한 표현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일상 사물에 인간사를 대입하여 삶의 원리를 독특하게 추출해
낸다. 이미 소멸해버린 시간까지도 구원하는 힘이 그녀의 시적 발언권이라 할 것이다. 그는 시 창작에 오래전 공자가 말한, 뜻이 통하는 표현이
중요하다는 사달(辭達)과 수식보다 진실이 더 우선이라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전통시관을 따르고 있다.
그의
시는 생활 일상 가까이에 있는사물을 대상으로 하여 체험과 느낌을 강조하는 창작태도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생활제재를 취한 시들이 시적 성취도가
높다. 이를테면 「늙은 고무장갑」 「어머니」 「치약 껍데기」 「항아리」 「단추」 「새우튀김」 「버선코」 「소화기」 「수건」 「페트병」 「마늘」
「낡은 장롱」 「부부」 「금간 화분」 같은 작품들이다.
해설을
쓴 시인 공광규 씨는 문숙 시의 특징이 “일상 생활제재의서정화, 부정과 비극의 정서화, 보편적 사랑과 모성적 상상력 발휘”라면서, “최근의 젊은
시인들의 시 쓰기와 달리 간명한 표현과 쉬운 내용을 특징으로 한다.”고 하였다.
[自序]
이
우주를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삶이다.
실체가
있건 없건,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살비듬까지도.
상처가
있어도 울 수 없는 것들에게
한동안
마음이 붙들려 있었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그들의 울음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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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
시는 나날의 생활과 경험 속에서 구체적으로 불거져 나온다. 일상의 존재들에 내재해 있는 진실이나 의미를 순간적 직관을 통해 포착해내는 것이 그의
시의 방법적 특징이다. 이러한 점만으로 보면 그의 시야말로 발견의 시, 깨달음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장독 위에 걸쳐 있는 고무장갑으로부터
누군가의 빛바랜 껍질을 발견하거나, 껍데기만 남아 깜박거리는 부엌 천정에 매달린 형광등으로부터 어머니를 깨닫는 것이 그의 시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다름 아닌 이러한 방법적 특징을 통해 삶의 생생한 지혜를 독자들에게 소나기처럼 퍼부어댄다. 어느 누가 이렇게 퍼부어대는 삶의 지혜를 감히
거부할 수 있겠는가.
─
이은봉 시인·문학평론가·광주대 문창과 교수
생활
속에서 시의 아우라를 발견하고 터득하는 견자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그녀의 시편들은 바람도 없는 날의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이는 파문처럼
잔잔하게 다가와 읽은 이의 마음을 적셔준다. 사물간의 유사성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시작되는 시상의 전개가 한결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은 상상력의
개화가 생활이라는 물적 토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재무 시인
호랑이의
꼬리 위에서 까치가 노니는 민화가 있다. 문숙 시인은 내게 그 까치를 연상시킨다. 세월은 거칠고 세파가 포효해도 그녀는 아랑곳없다. 생명은
흐르는 것이요 사용된 육신은 용도 폐기되는 법. 하지만 누추한 껍데기에 남아 있는 마지막 불씨를 노래하는 이 집요한 애착을 보라. 그뿐, 섣부른
변명도, 교훈도, 각성도 용인치 않는다. 세상과 통하되 낙오자의 좌절도, 득의자의 오만도 없다. 누가 생을 이렇게 알뜰히 사랑하는가. 이미
소멸해버린 시간들을 구원하는 힘이 그녀의 시적 발언권이라 할 것이다.
─
김형수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