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윤학 시인 여섯번째 시집 출간
언어는 정신까지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윤학 시인이 제2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인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이후 3년여 만에
다섯번째 시집을 냈다. 삶 주변의 낯익은 사물·사건들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옮긴 시 60편을 묶은 『그림자를 마신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15년 동안 다섯 권의 시집을 냈으니 3년에 한 권 꼴이다. 이번에도 그 사이클을 대략 맞춘 셈인데, 이를 통해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 시인인지, 아니 얼마나 진솔하게 시를 업(業)으로 삼고 있는 시인인지 옹골차게 증명된다.
이윤학의 시는 담백하고
명징하다. 그의 시는 드라이하면서도 단단하다. 그는 시에 있어서만큼은 기교나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싸움을 걸어오는 세상과 언제나
정면으로 맞설 뿐이다. 그 싸움의 끝장에 사리 같은 그의 시가 촘촘하게 박혀 있다. 시에 대한 이러한 자세와 독기가 그의 시의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같은 업(業)을 살고 있는 정병근 시인의 해석이다.
이번 시집 『그림자를 마신다』 역시 이윤학 시의 진면목은
‘묘사력’에서 나온다. 크지 않은 사물·사건들도 그의 시야에 걸려들면 세상의 단면(單面)이 되거나 삶에서의 중요한 상징이 된다. 시시콜콜
진술하고 나열하고 주장하는 방식에 비하면 그의 ‘묘사’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이미지들을 (설명하지 않고도) 보여준다. 시집
뒤표지의 ‘시인이 쓰는 산문’에 “언어는 정신까지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라 적은 단 한 줄의 경구 역시 그러한 인식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아주 쉬운 시어들로만 엮인 그의 시편들을 보다보면 이윤학 시인의 정신이 보여주는 도저한 의식의 흐름과 마주하게 된다. 그 이미지는 단순한
듯하지만 정갈하고, 투박한 듯하지만 사실은 단단하다. 마치 ‘언어’의 기능은 본시 그러했다는 듯.
저자 및 역자소개
이윤학
시인 이윤학은 196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해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먼지의 집』(1992)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1995)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1997)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2000)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2003)가
있으며, 제2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
차례
제1부
직산 가는 길/후박나무 잎사귀 체/오리/풀밭/시금치밭/오동나무 그늘/민들레/개구리 알 둘/빗방울/여자아이와 하트와
화살/새소리/은행잎 카펫/뿌리/대문 앞/억새풀
제2부
흰 철쭉/나이테/절름발이 까치/장미/올챙이/죽변/기침/다리/모차르트를
듣는다/겨울 법수치계곡/손/확인/광천/겨울밤/단풍잎 장판
제3부
나팔꽃/순간/무덤이라는 동네/넝쿨장미/목장길 1/목장길
2/유월 한낮이다/그림자를 마신다/쉰내/등/흔적/애무/은행잎들/팔월/납가새
제4부
겨울
하늘/눈/개미/남부터미널/십일월/시월/추석/끈/닭대가리들/호박꽃/하루 종일 귤만 까먹었다/수도꼭지/밤나무/갈대/어머니 말씀
해설 |
응시와 묘사의 매혹·정병근
보도 자료
■ 앞날개 소개
글
시집 『그림자를 마신다』는 평범한 일상 한쪽에 낯선 행성 하나를 숨기고 있다. 시어들은 간결하고 단정하게 일상의 한 국면을 펼쳐
보인다. 그냥 그렇게 대수롭잖게 지나가던 인생은 어느새 행성에 탑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행성은 자신도 모르던 자신의 마음과 미처
몰랐던 일상의 이면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제 알았으니 다독거려야 한다. “이제 제발 ……척하지 말자”고 시인은 말한다.
■
해설 | 「응시와 묘사의 매혹」 중에서
이윤학, 그는 응시와 묘사의 시인이다. ‘묘사’야말로 그를, 그의 시를 그의 시답게 만드는
원료이며 키워드이다. 그에게 묘사는 진술을 극복하는 대안이며, 시적 감동과 성취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수단이다. 그는 ‘말하기(진술)’보다
‘말 안 하기(묘사)’를 통해 고통의 뇌수를, 들끓는 상처를, 욕망의 안팎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그의 시는 매미 소리 낭자한 여름
한낮의 땡볕처럼 쨍쨍하고, 호수 밑바닥의 돌처럼 먹먹하고, 바람에 씻기는 버드나무처럼 골똘하다. 그것이면 된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말을 하는 순간, 시는 실패하고 만다. 이 게임에서는 먼저 입을 열거나 숨을 쉬는 자가 진다. 어릴 때 즐겨했던 숨 참기 놀이나 말 안 하기
놀이에서처럼 말이다. 요컨대, 진술(생각의 욕망)로 덧칠한 그림보다 군더더기 없는 한 컷의 사진이 훨씬 더 깊은 여운과 감동을 준다.
‘그립다’고 백 번 말(진술)하기보다 ‘그리운 정황’을 포착하여 적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훨씬 더 그립게 한다. 이것이 바로 묘사의 힘이다.
묘사는 말 없음의 자장이 만들어내는 거리와 여운의 미학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더 깊이 각인되는 필생의 장면 같은 것이다.
이윤학은 이러한 묘사의 매혹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이다. 묘사로 다져진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떤 염결성마저 느껴질 때가 있다. 그는 응시와
묘사라는 화두를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담금질해왔다. 진술은 철저히 죽일 것. 무엇을 말하려 하지 말 것. 설득하지 말 것. 대상의
범위를 최대한 좁힐 것. 눈에 핏발이 설 때까지,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릴 때까지 지켜볼 것. 이것은 그가 그의 시를 위해 지켜야 할 스스로의
엄혹한 계율이다. 그는 시를 ‘쓰’지 않고 ‘옮긴다’는 표현을 고집한다.
[……]
그는 철저한 묘사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를
쓰지 않고 옮긴다. 읽는 사람에게는 얼핏, 그의 시가 재미가 덜해 보이는 것도 이와 같은 시작 방법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을
때에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거의 진공 상태에까지 몰아가는 묘사가 독자를 숨 막히게 만든다. 그러나 숨을 참고 한 편의 시를 다 읽어냈을 때
찾아오는 여운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그 되새김에 값한다.
[……]
그는 시에게 아무런 말도 걸거나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시를,
쓰지 않고 그냥 옮김으로써, 시적 대상과의 완전한 합일을 꿈꾼다. 현상 세계의 크고 작은,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이미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시 이전의 것인 것이다. 불이(不二),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가 거기에 있다. 나는 그의 시를 통해,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새삼 깨닫게 되었음을 숨기지 않겠다. 그의 표현대로, “언어는 정신까지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 시인의 말
시흥시 목감동에서 2년을 살았다.
4층 사무실에서 텃밭을 바라보았다.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는 걸 지켜보았다. 나도
한 뙈기 텃밭을 가꿀 수 있다고 믿어보았다.
거둘 수 없는 수확의 기쁨이 찾아왔다.
그것이 내게
시를 옮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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