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스크랩] [박순서] 집 - 2006년 동양일보 당선작

자크라캉 2006. 2. 22. 11:38

2006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집

 

               박순서

 

 

언 강을 떠나는 새는

내 눈 속으로 들어와 집을 짓는다
나는 차마 관 뚜껑을 닫지 못한다
하루살이처럼 세상 휘저으며 여태껏 살아
나는 누구의 보금자리가 되었는가

언 강에도 새들의 집이 있고
꽃이 진 마른 대궁에도
봄볕의 집은 남아있다
내 눈 속의 새들아
이제 돌아갈 길일랑 잊어버려,
마지막 웅덩이에 고인 빗물처럼
흐르다 흐르다 내 몸에 칭칭 감기어
안온한 보금자리에 머무름 같이
너 이제 날개를 묻으라

능선을 넘으면 내 무덤이 있다
낯선 바람에 끌려가다
부리로도 울지 못한 네 눈물이 있다
저기, 보아라
저승 가는 길목에 굶주린 까마귀가
까르륵 까르륵
빈 솥에 밥을 푸고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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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차 예선을 거쳐 심사위원에게 넘겨진 작품은 49명의 285편이었다. 3일 동안 꼬박 밤을 지새면서 읽었다. 어느 해 보다도 정성들인 시편들의 높은 수준에 즐거웠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은행나무에 걸린 곡예사’(부산 박미경)는 소재가 이색적이고 신선했지만 어딘지 설득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았다. 시어 선택이 너무 경직된 탓이 아니었을까. ‘아궁이’(충북 박태순)는 너무 물기 없는 시적 분위기가 당초의 의도를 다 살리지 못한 것 같았고, ‘호박 속의 모기’(경북 권영하)는 주제 설정도 좋았고 잘 읽혔지만 구성이 약간 산만스러웠다. 집중력이 조금 부족했다. ‘풍장’(광주 정철웅)도 좋았지만 ‘수만리에서’가 더 잘 읽히고 애정이 갔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남은 작품이었다. 기승전결중에서 결이 약했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집’(서울 박순서)은 그 끈적끈적한 시어들이 끝까지 놓지 않게 했다. 전체적인 시의 구도도 짜임새가 있었다. 그릇, 형식에 알맞는 내용이 잘 맞아 들어간 것 같다. ‘수만리에서’와 두 작품을 놓고 겨루다가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 설득력이 앞서는 ‘집’을 당선작으로 민다. 다른 작품과 달리 절제된 시어로 인하여 이미지가 투명해서 전달력이 뛰어나다. 금년도 응모작품들은 모두 상당기간의 수련을 거친 분들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아직도 표현을 위하여 너무 많은 시어들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것은 주제가 잘 익고 절실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너무 일찍 손댄 것일 수도 있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리다 보니 말이 앞서고 많아졌다. 어느 한곳에 카메라의 초점을 잘 맞춰야만 하는데 이런저런 사물들을 사용하다보니 길어지고 이미지 또한 흐려지고 말았다. 설득력이 떨어지고 나 홀로의 시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감동 또한 약해졌다. 시는 장시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짧아야만 이미지의 투명성이 돋보이고 리듬이 되 살아난다. 그래야만 호소력도 강해진다. 주제에 따른 언어의 경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초부터 카메라의 위치를 잘 선택해야만 한다.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려서 많은 사물을 담으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집을 건축하는데 쓸데없이 많은 재료들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오늘의 시는 눈보라치는 겨울밤의 연탄불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 당선된 분께 박수를,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공부하시다 보면 좋은 소식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박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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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내 집은 내 안에 있다.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기를 두드렸다. 첫눈에 알았다. 누가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나는 괜히 먼저 흥분했다.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두 번이나 건넸다.
“ 당선입니다! ” ‘내가 뭘 잘못 듣기라도 한 것은 아닌가?’ 외로운 날들아, 아픈 날들아,
바다가 차오르고 새들이 날아가도 나는 거기 그대로 돌아서지 않았다. 북풍이 아무런 말도 없이 다가와 나를 죄 많은 아이라며 후들겨 팰 때, 눈물샘을 나온 내 눈물이 그 짧은 볼을 못다 흐르고 볼 위에 살얼음으로 남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훑어 내어야 나도 집을 지을 수 있는가.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것은 아직도 내가 그림자 속에 있는 탓인가. 외로웠다. 그러나 별이 떠나간 새벽은 나만의 세상이다. 세상에 가진 것 없는 내게 밤마다 꿈은 풍요로웠다. 꿈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몇 날을 투덜거렸다. 그런 며칠 후, 흰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눈을 밟으며 하얗게 피어오르는 어린 날의 나를 생각했다. 밤새 호롱불을 켜놓고 연필심지에 침을 발라가며 써놓은 원고지를 아버지가 몽땅 불 태워버렸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면 도대체 밥은 뭘로 먹고 살 거냐!’ 이제 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 계시고, 나는 지금도 소년이다. 그때처럼. 부족한 저에게 너무나 큰상을 주심에 송구스럽다.
함께 응모한 모든 문학도들과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다. 길은 여러 갈래로 나있어 흩어질 것 같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 따스함으로 상대를 녹일 수 있도록 말이다.

 

 

출처 : 시와 시인
글쓴이 : 이동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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