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어의 비망록
심은섭
참선하는 나의 선방은 얼음장 밑입니다 오랫동안 뜬 눈으로 수행을 해야만 몸속 등뼈가 훤히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항아리 속 밀주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깊이를 발설하지 않는 폐광 속 어둠으로 살아서는 더욱 안 됩니다
휘어진 바깥세상의 등을 펴주려고 오직 지느러미로 목어만 두드리며 삽니다 금식의 규율을 지키려고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무젓가락을 한 번 사용해 본 적이 없어 그 젓가락이 몰락한 왕조의 황후가 사용하던 비녀로 기억될 뿐입니다
이곳 수행의 엄한 계율은 저렴한 눈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에 강물이 짤 리가 없으므로 비단잉어 혓바닥에 욕망의 이끼가 끼기도 하지만 달밤에 수달피가 던져놓은 어망과 악수를 거부한 지 오래되어 이미 나의 두 손은 퇴화하고 말았습니다
-출처 : 2022년 《시와시학》 가을호
심은섭
〈악력〉-심은섭
- 2004년 『심상』으로 등단
-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2009),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2021) 외
- 평론집,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2015). 『상상력과 로컬시학』(2021) 외
- 2008년 「제1회 5,18문학상」 수상
- 2022년 「제22회 박인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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