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아내 - 심은섭

자크라캉 2021. 10. 2. 13:06

  아내

 

    심은섭-

 

 

   얼굴은 하얀 목련이지만 뒷모습은 사월 초파일이다 나와 함께 한 방향으로 기관총을 쏘는 총잡이다 내가 마른 강물로 흐를 때면 기우제를 지내주는 제사장이고 대기권을 이탈하는 유성을 바라보며 서로 슬픔을 수혈하기도 했다

 

   때로는 통기타 1번 선의 C단조였다가 내가 어둠의 깃발로 펄럭일 때 푸른 새벽을 불러주었다 붉은 장미꽃이 지천으로 핀 5월이면 초병의 눈초리로 경계를 강화하지만 10월이 오면 어김없이 황금불상의 미소를 건네는 능금이다

 

   오랜 생의 전투로 사기가 저하된 패잔병인줄로 알았으나 탄알이 장전된 38구경 6연발 권총 한 자루였다 단단한 몇 개의 고독이 실밥이 터진 나의 정신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할 때마다 내 손을 잡고 함께 군가를 불러주는 전우였다

 

 

  -출처 : 2021년 《한국미소문학》가을호에  [초대시인 대표작]으로 재발표

'나의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금의 조건 - 심은섭  (0) 2021.10.02
만삭의 여인 2 - 심은섭  (0) 2021.10.02
쉬파리 - 심은섭  (0) 2021.09.23
홍옥 - 심은섭  (0) 2021.09.23
독도학 개론 - 심은섭  (0)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