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하산下山
심은섭
혀가 검은 사람들이 떼 지어 산을 오른다
그때부터 계곡물은 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걸으며 야생화의 혈관을 짓밟을까봐
맨발로 계곡을 따라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발톱이 없는 까닭이다
몇 개의 빗방울만 내려가는 줄로 알았으나
수천 개의 은빛여자들이
빈 젖을 입에 물고 우는 어린물방울을
등에 업은 채 걷고 있었다
그래서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했던 것이었다
오직 허기를 채우려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하산하는 줄 알았으나
어둡기 전에 두 무릎 꿇고 온갖 폐수를 받아주는
바다를 만나야 했다
그래서 앞만 보고 흘렀던 것이다
-2021년 『문예감성』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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