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물의 하산下山 - 심은섭

자크라캉 2021. 8. 28. 17:13

 

물의 하산下山

 

 

심은섭

 

 

 

혀가 검은 사람들이 떼 지어 산을 오른다

그때부터 계곡물은 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걸으며 야생화의 혈관을 짓밟을까봐

맨발로 계곡을 따라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발톱이 없는 까닭이다

 

몇 개의 빗방울만 내려가는 줄로 알았으나

수천 개의 은빛여자들이

빈 젖을 입에 물고 우는 어린물방울을

등에 업은 채 걷고 있었다

그래서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했던 것이었다

 

오직 허기를 채우려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하산하는 줄 알았으나

어둡기 전에 두 무릎 꿇고 온갖 폐수를 받아주는

바다를 만나야 했다

그래서 앞만 보고 흘렀던 것이다

 

 

 

-2021문예감성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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