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지명수배자 제1호 - '봄'

자크라캉 2021. 8. 28. 16:45

 

   지명수배자 제1

   -

 

 

   심은섭

    

 

 

   그는 겨울을 살해한 사형수다 온몸에 살구꽃 문신이 새겨져 있다 어느 그믐날, 2월의 담장을 넘어 탈옥하여 긴급 지명수배 되었고, 인상착의는 벚꽃을 빼닮았다 새들은 몽타주가 인쇄된 수배 전단지를 물어다 온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다

 

   순찰을 돌던 배추흰나비가 그를 체포했을 때 동물원의 침팬지들이 술렁거렸다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의 전신엔 태양의 모발이 바늘처럼 자랐고, 동면에서 깨어난 비단뱀이 사냥을 위해 앞발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그가 들판에 구금되던 날, 자폐증을 앓던 패랭이꽃은 우울의 끝이라고 단정했고, 흰 피를 흘리며 순교를 꿈꾸던 암탉은 일곱 마리의 새벽을 부화했다 벽난로가 이마를 식힌다 내 목덜미를 할퀴던 바람도 방죽에 앉아 손톱을 깎는다

 

 

 

*[출처] 시집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 (상상인, 2021)  /  2011올해의 좋은 시 100, 웹진 시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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