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街 소식

'제비꽃 서민문학상'

자크라캉 2011. 3. 15. 15:16

 

시상식이없다, 심사위원이 없다, 대외 홍보가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보다 형편 어려운 작가 선정
"제비꽃의 겸손 배우자"

저마다 문학적 권위와 자랑에 바쁜 수많은 문학상 사이에서 흔치 않은 상이 하나 있다. 이름은 제비꽃 서민문학상. 상금은 1000만원. 흔치 않은 이유는 이렇다. 첫째, 시상식이 없다. 공개된 시상식뿐만 아니라 내부 상금 전달식도 없다. 상금은 수상자의 통장에 바로 입금된다. 둘째, 심사위원이 없다. 상을 받은 사람이 그다음 수상자를 지명한다. 선정 기준도 느슨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 형편 넉넉치 않지만 글 잘 쓰는 문인 정도다. 수상자는 대략 4개월마다 한 명. 이렇게 애매한 조건이라면 잡음과 뒷소리도 많을 것 같지만 큰 탈 없이 4년을 보냈다.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대략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이다. 2007년 첫회 수상자는 고(故) 이청준(소설), 신경림(시). 셋째, 문단 밖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상을 후원하는측에서 대외 홍보에 큰 뜻이 없던 탓이다.

지난주(3월 6~9일) 한국 문인 10여명이 일본 아오모리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천만다행으로 대지진 직전이었다. 참여 문인은 신경림 이경자 이현수 은희경 박규리 안재성 김인숙 한창훈 공선옥 김종광. 초대 손님이었던 작가 은희경을 제외하면 모두 '제비꽃 서민문학상'의 수상 작가들이다. 문인들을 초청한 A은행이 이 상의 후원사. 영원한 문학청년인 오너 B회장은 은행 이름은 물론 자신의 이름도 실명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소박하고 투박한 상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만 한마디 했다. 행화(行花)라고. "땅바닥에서 10~20㎝ 높이에 피는 제비꽃을 보려면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겸손하게 서민들을 모시자는 취지입니다."

아오모리(靑森)는 맛있는 사과의 고장으로 익숙하지만 동시에 문호 다자이 오사무(太宰館·1909~1948)의 고향. 네 번의 자살 미수 끝에 결국 마흔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간 실격'의 천재 작가다. 생가(生家) 사양관(斜陽官)을 찾았다. 대지주이자 고리대금업자였던 오사무 부친이 지은 집. 1층에만 방 11개, 2층에는 8개로 지금은 국가중요문화재인 대저택이다.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아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아버지는 큰 집을 지었다. 이 집은 멋대가리가 없다. 그냥 크기만 하다."

3월이지만 눈보라는 몰아쳤다. 일본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 제비꽃 서민문학상 수상작가들이‘눈의 나라’의 시간을 잠시 멈췄다. 대지진 사흘 전인 8일 오후의 일이다. 왼쪽부터 안재성 김종광 공선옥 신경림 박규리 한창훈. /아오모리(일본)=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

생가를 둘러본 원로 시인 신경림(76)이 엄숙했던 분위기를 한 마디로 바꿨다. "(집이) 이런데도 그것밖에 못 썼나?" 후배 문인들의 폭소가 터졌고 은희경이 덧붙였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에만 몰두할 수 있었을 거야."

다자이 오사무 집안의 부(富)와는 굵은 실선으로 가로막은 단절이 있는 문인들이었지만 술자리와 유머만큼은 그들이 최고의 부자였다. 한때 에로 비디오 주연 제안을 받았다는 거구의 미남 작가 한창훈을 선후배들은 '문단 최후의 육체파'로 치켜세웠고 '이 환장할 봄날에'를 쓴 여성 시인 박규리는 전북 고창의 조그마한 암자 미소사에서 10년 동안 스님과 '싸우며' 지냈던 자신의 공양주(供養主) 생활 이야기로 모두를 웃기고 울렸다.

아오모리에는 3월을 훌쩍 넘겼는데도 눈보라가 휘날렸다. 겨울 한철에만 10m의 눈이 온다는 일본 혼슈 최북단. 눈은 나흘 동안 멈춘 적이 없다. 거문도 바닷가에서 온 한창훈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그 눈발을 "바닷속 멸치떼"같다고 표현했다. 한도 많고 정도 많은 작가 공선옥이 "겨울이 깊은 곳은 문학도 깊다"고 받았다. 멸치떼 같은 흰 눈발이 푸른 삼림(靑森)을 분방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출처: '신춘문예공모나라'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