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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공인작가 南서도 통할까… 변방 넘어서는 탈북자 문학

자크라캉 2012. 6. 16. 01:04

사진<미디어다음>에서 캡처

 

 

[View] 공인작가 南서도 통할까… 변방 넘어서는 탈북자 문학

 

2000년대 들어 문단서 '새싹'
김성민·최진이·장진성 등 주목
김유경 '청춘연가' 역동적 묘사
"고발·증언 문학의 틀 깨" 평도

 

한국일보 | 이훈성기자 | 입력 2012.06.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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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문학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1990년대부터 하종오나 정도상 이대환 강영숙 강희진 조해진의 소설, 시 등에 등장하는, 남쪽 작가들의 문학적 소재가 되어온 그들이 이제 스스로 창작 주체로 적극 나서고 있다.

2000년대 움튼 탈북자 문학

탈북 작가들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북한에서 시인ㆍ극작가로 활동했던 김성민(50) 자유북한방송대표가 2003년 한국문인협회 계간지 '자유문학'에 시 12편을 발표하며 탈북자로 첫 등단 시인이 됐다. 역시 시인으로 활동하다 귀순한 최진이(53)씨는 2005년 험난한 탈북 과정과 남한 생활을 다룬 에세이집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 최진이>를 펴냈다. 김대호씨는 영변 핵단지 내 4월기업소(우라늄 정련공장)에서 인민군 예술선전대 소속 작가로 활동한 전력을 바탕으로 2004년 자전적 소설 <영변 약산에는 진달래꽃이 피지 않는다>를 냈다.

주목 받는 장진성, 김유경

드문드문 발표되던 탈북자 문학 작품이 주목을 받은 계기는 장진성(41ㆍ뉴포커스 대표)씨가 2008년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펴내면서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조선노동당 작가로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도 자주 시를 발표할 만큼 창작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이 시집에서 굶주림과 국가 폭력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간결한 시어로 충격적으로 고발했다. '밥이라면/ 시퍼런 풀죽으로만 알던 아이/ 생일날 하얀 쌀밥 주었더니/ 싫다고 발 버둥치네/ 밥 달라고 내 가슴을 쥐어뜯네'('밥이라면'에서)

장씨는 이듬해 김정일의 은밀한 사생활을 소재로 한 서사시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를 펴냈다. 그는 시인의 말에 "김정일을 보좌하던 당조직부 5과 의례원들의 만남은 나로 하여금 김정일의 다른 측면을 알게 한 충격, 그 자체였다"고 창작 동기를 밝혔다.

탈북자 문학에 대한 관심은 올해 4월 출간된 김유경(필명)씨의 장편소설 <청춘연가>로 더욱 커지고 있다. 평양에서 작가로 활동했던 김씨는 북한과 중국, 남한 하나원을 배경으로 탈북자의 다양한 군상을 핍진하고 역동적으로 묘사, 탈북자를 다룬 이전 문학 작품이 드러냈던 고정관념과 전형적 인물 묘사를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증언문학ㆍ고발문학의 틀을 벗어난 탈북자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 소설이 단행본 매출 규모로 국내 수위인 대형 출판사(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됐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탈북 작가들이 그동안 조갑제닷컴, 시대정신 등 보수 성향이 강한 소규모 출판사에서 작품을 내온 것과 비교된다. <청춘연가>의 출간에는 소설가 김훈씨 주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공인작가 출신이 대부분

현재 활동 중인 탈북 작가들은 대개 북한에서 작가로 등단해 활동했던 이들이다. 앞서 거론한 작가들은 모두 북한의 공인 작가 단체인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작가동맹) 소속이었다. 이중 김성민, 최진이씨는 북한을 대표하는 작가 양성 기관인 평양 김형직사범대 출신이다.

북한은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을 적극 통제하는 체제다. 최상위 통제 기구는 김정일이 후계자 수업 당시 부장으로 있었던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작가들은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에 의무적으로 가입해 당 선전선동부의 지도와 검열을 받는다. 작가동맹은 문예총 내 문학가 조직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글 재주가 있고 글을 쓰고 싶다고 누구나 등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 발표 기회나 발표 지면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제약이 된다. 그만큼 작가는 선망의 직업이고 사회적 지위도 높다. 장진성씨도 "북한에서 시인은 귀족작가로 불린다"며 "그 시절 나는 분명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작가가 되는 정통 코스는 중앙에서 발행하는 신문ㆍ잡지에 작품을 싣는 것이다. 성공하면 작가동맹의 인정을 받아 3년제 전문 작가 양성소인 김형직사범대학에서 수업을 받는다.

국제 무대로 보폭 넓혀가

탈북 작가들의 활동 무대도 넓어지고 있다. 오는 9월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 펜 대회에서는 '망명 북한 펜 본부' 설립 안건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펜 본부는 장진성, 림일(<소설 김정일> 작가), 정성산(뮤지컬 '요덕스토리' 제작자) 등 탈북 작가 20여 명이 결성한 단체. 114개국이 가입하고 있는 세계적 문학 단체에서 탈북 작가들의 존재를 공인하는 셈이다.

장진성씨는 런던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이달 26일부터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 시인 대회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The Poetry Parnassus)'에 북한 대표로 초청 받았다. 영국 주요 언론들은 장씨를 "김정일의 관변 시인"이라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