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그곳에는 그리움이>님의 카페에서
[제39회 한대신문 문예상 시 부분 대상]
하얀 어둠 / 김양규 <한양공대ㆍ건축학부 02>
밤새 희미하게 비치던 눈빛은 조심스레 녹아내려 없어졌다
눈처럼 사라지고 싶은데 나는 그대로다
눈 위에 더듬어진 흰 갈색 발자국마저
사라져 버린다
형체 없이 슬며시 사라졌다
사라지는 흰 갈색
소리 소문 없이
서서히 없어질 것은 또 뭐람
울음은
눈녹음처럼 서서히 감추기
발자욱처럼 형체를 감추기
누군가 내 마음속에
사라짐을 전하고 있나
흰 갈색 남기고 사라진 사람은
가슴속으로 하얗다가 검게 퍼지고
이내 사라져버렸다
이제 다시 눈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다시 눈 위에 더듬어질 갈색자국을 꿈꾸는
하얀 겨울 어느 날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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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한양대 인문대 국어국문학과>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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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완성도와 미적 충실성에서 미흡한 부분 많아 아쉬워
2009년 한양대학보 문예상 시 부문에는 많은 학생들이 패기에 찬 작품들을 많이 응모해주었다.
최근 세태에 민감하게 편승하기보다는, 각자의 경험적 구체성을 바탕으로 언어 미학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욕이 많이 늘어난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만하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나 미적 충실성에서는 아직도 미흡한 결과가 많아서 앞으로 더욱 정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 가운데 심사자는 다음의 시편들을 선택하여 각각 추천하고자 한다.
다수의 우수한 작품 중 대상작으로 선정된 「하얀 어둠」은 ‘눈’처럼 사라져버린 갈색의 어떤 자국을 선명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감각적 시편이다. 어쩌면 ‘사라짐’ 자체에 대해 노래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바로 그 ‘사라짐’의 구체적 맥락이나 내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화자가 노래하려는 정서의 실감이 반감되는 것이 아쉬웠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저녁 물가의 축문(祝文)」은 저수지에서 벌어진 한 남자의 죽음을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와 감각으로 재현해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물’과 ‘불’, ‘허연 살’과 ‘검은 외투’ 등의 대립적 이미지를 교차하면서 물 속에서의 죽음과 삶에 대한 직조 능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물질성으로서의 감각이 살아 있는 데 비해, 그 죽음을 둘러싼 구체적 맥락이 부족해 역시 아쉬웠다. 가작 작품으로 선정된 「심청2009」는 심청전 서사를 패러디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이의 내면을 ‘어둠’ 그 자체의 감각으로 들려주었다.
활달한 언어와 ‘눈멂’과 ‘어둠’의 감각을 표현하는 데 장점을 가진 시편이지만, ‘섬’조차 없는 암담한 현실의 물질성을 새로운 묵시록적 이미지로 나아가게끔 하는 데는 한계를 가지지 않았나 생각하였다.
아쉽게도 당선작에 선정되지는 못했으나 가작 후보작으로 추천된 「나비고기」는 슬픈 꿈 같은 ‘나비고기’라는 존재를 대상으로 하여 내면에 파동치는 고독의 감각을 실물감 있게 전달해주고 있다.
일견 단조로워 보이는 반복 속에서 생의 불가피한 비애를 잘 드러냈다. 하지만 그 비애를 바라보고 있는 화자의 시선이 선명한 구심으로 모아지지 않았다. 때문에 모호성을 드러낸 것이 흠으로 지적될 만하다.
앞으로 더욱 깔끔하게 언어적 구성을 완성한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한양대학보 문예상의 위상을 점점 높여가기를 기원해본다. 특히 시 부문에서 더 많은 작품들이 나와주기를 바란다.
출처: 한양대학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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