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시인

얼굴 / 이상(李箱)

자크라캉 2009. 11. 20. 22:24

 

 

사진<화가 이상원 님의 작품> 중에서

 

굴  / 이상(李箱)

   
배고픈얼굴을본다.

반드르르한머리카락밑에어째서배고픈얼굴은있느냐.


저사내는어데서왔느냐.
저사내는어데서왔느냐.


  저사내어머니의얼굴은박색임에틀림없겠지만저사내아버지의얼
굴은잘생겼을것임에틀림이없다고함은저사내아버지는워낙은부자
였던것인데저사내어머니를취한후로는급작히가난든것임에틀림없
다고생각되기때문이거니와참으로아해라고하는것은아버지보담도
어머니를더닮는다는것은그무슨얼굴을말하는것이아니라성행性行
을말하는것이지만저사내얼굴을보면저사내는나면서이후대체웃어
본적이있었느냐고생각되리만큼험상궃은얼굴이라는점으로보아저
사내는나면서이후한번도웃어본적이없었을뿐만아니라울어본적도
없었으리라믿어지므로더욱더험상궃은얼굴임은즉저사내어머니의
얼굴만을보고자라났기때문에그럴것이라고생각되지만저사내아버
지는웃기도하고하였을것임에는틀림없을것이지만대체로아해라고
하는것은곧잘무엇이나흉내내는성질이있음에도불구하고저사내가
조금도웃을줄을모르는것같은얼굴만을하고있는것으로본다면저사
내아버지는해외를방랑하여저사내가제법사람구실을하는저사내로
장성한후로도아직돌아오지아니하던것임에틀림이없다고생각되기
때문에또그렇다면저사내어머니는대체어떻게그날그날을먹고살아
왔느냐하는것이문제가될것은물론이지만어쨌든간에저사내어머니
는배고팠을것임에틀림없으므로배고픈얼굴을하였을것임에틀림없
는데귀여운외톨자식인지라저사내만은무슨일이었든간에배고프지
않도록하여길러낸것임에틀림없을것이지만아무튼아해라고하는것
은어머니를가장의지하는것인즉어머니의얼굴만을보고저것이정말
로마땅스런얼굴이구나하고믿어버리고선어머니의얼굴만을열심으
로흉내냇것임에틀림없는것이어서그것이지금은입에다금니를박은
신분과시절이되었으면서도이젠어쩔수도없으리만큼굳어버리고만
것이나아닐까고생각되는것은무리도없는일인데그것은그렇다하더
라도반드르한머리카락밑에어째서저험상궃은배고픈얼굴은있느냐.

 

[시평]

 

「얼굴」이라는 시는 한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시인의 무의식에 떠오르는 생각을 호흡의 중단 없이 단숨에 써 내려간듯한 시이다. 이 시에서는 논리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고, 그렇다고 의미의 연결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띄어쓰기, 쉼표 등을 무시해서, 무의식에 떠오르는 생각들 사이로 의식이 끼어들지 못하고, 그 생각들에 대한 성찰과 분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얼굴」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무궁무진한 속삭임을 아무런 주제도 설정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써 내려간자동 기술의 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