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시인

지비紙碑 / 이상

자크라캉 2008. 11. 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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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보세상>님의 카페에서

 

비紙碑  / 이상

 

 

지비1

 

안해는 아침이면 외출한다 그날에 해당한 한 남자를 속이려 가는 것이다 순서야 바뀌어도 하루에 한남자이상은 대우하지않는다고 안해는 말한다 오늘이야말로 정말 돌아오지 않으려나 보다하고 내가 완전히 정말하고나면 화장은있고 인상은없는얼굴로 안해는 형용처럼 간단히 돌아온다 나는 물어보면 안해는 모두 솔직히 이야기한다 나는 안해의 일기에 만일 안해가 나를 속이려들었을때 함즉한속기를 남편된자 ?밖에서 민첩하게 대서한다.

 

 

지비2

 

안해는 정말 조류였던가보다 안해가 그렇게 수척하고 가벼워졌는데도 날으지못한 것은 그손까락에 낑기웠던 반지 때문이다 오후에는 늘 분을바를 때 벽한겹걸러서 나는 조롱을느낀다 얼마안가서 없어질때까지 그 파르스레한주둥이로 한번도 쌀알을 쪼으려들지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열고 창공을 쳐다보면서도 고흔목소리로 지저귀려들지않았다 안해는 날을줄과 죽을줄이나알았지 지상에 발자국을 남기지않았다 비밀 한발은 늘보선신고 남에게 안보이다가 어느날 정말 안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음방안에 조분내음새가 풍기고 날개퍼덕이던 상처가 도배위에 은근하다 헤뜨러진 깃부시러기를 쓸어모으면서 나는 세상에도 이상스러운것을얻었다. 산탄아아 안해는 조류이면서 염체 닻과같은쇠를 삼켰드라그리고주저앉았더라 산탄은
녹슬었고 솜털내음새도 나고 천근 무게더라 아아

 

 

지비3

 

이방에는 문패가없다 개는이번에는 저쪽을 향하여 짖느다 조소와같이 안해의 벗어놓은 버선이 나같은공복을 표정하면서 곧 걸어갈것같다 나는 이방을 첩첩이닫히고 출타한다 그제야 개는 이쪽을향하여 마지막으로 슬프게 짖느다

 

 

 - 「조선중앙일보」, 1936년 -

 

 

[시평]

먼저 아내를 조롱(새장)에 갇혀 있는 새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 새는 날개를 달고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아내는 본질적으로 한 남자에 종속된 처지 이전에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고 싶은 존엄한 존재이다. 그런 아내가 화자에게 시집와 살림살이에 시달리며 많이 수척해졌다. 아내는 자유를 희구하지만 아내를 옥죄는 건 반지, 즉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약이다. 아내는 외출하려고 화장을 할 때도 자신이 조롱(새장)에 갇힌 구속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아내는 쌀알을 쪼려 들지도 않고 창공을 향해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도 않고 지상에 발자국을 남기지도 않을 정도로 힘들게 살다가 죽었다. 

화자는 아내가 죽은 뒤 방 안에서 풍기는 조분(새똥) 냄새를 맡고 비로소 아내가 새장에 갇힌 채 자유를 빼앗기고 구속당한 새인 줄을 알았다. 화자는 아내가 죽은 뒤 방안을 수습하다가 아내가 자유를 향해 비상하지 못한 것은 사회적 구속인 산탄 총알을 맞고 무거운 쇠를 삼켰기 때문인 걸 알고 회한에 잠긴다.

이 시는 '창공, 날개'로 상징되는 자유를 향한 비상과, '반지, 산탄, 쇠'로 상징되는 사회적 억압을 대조적으로 놓아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봉건적 가부장제 하에서 억압과 인종의 세월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던 이 땅의 '아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한편 아내를 여성에게 가해지는 봉건적 억압의 희생물로 읽지 않고 사회적, 제도적 억압에 의해 질식한 시인 자신의 영혼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상의 소설 <날개>를 참고하면 이해될 것이다.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지비 → 이상이 만든 언어(조어)로, 석비(石碑)의 '돌'을 '종이'로 환치한 것. 

                      이로써 '돌로 된 비석(기념, 紀念)'에 대한 반어적 의미와 태도를 보여준다.

    * 반지 →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약과 구속을 상징

    * 헤뜨러진 깃부시러기 → 흐트러진 깃털

    * 산탄 → 폭발과 동시에 많은 잔 탄알이 퍼져나가는 탄환으로, 가까운 거리의 새나 짐승을

                  잡는데 이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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