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어떤 손수건 / 심은섭

자크라캉 2009. 7. 30. 11:12

 

 

사진<한문과 詩사랑>님의 카페에서

 

떤 손수건  / 심은섭 

 

 

  탈진한 건조대의 빨래들이 투명한 기호를 방출하며 우는 것은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제의이다 가령 적막을 거느린 사막으로 펄럭이는 온 전신의 손수건이 그렇다

 

  생햇살이 주식主食인 까닭으로 갈증에서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 손수건에 천공을 내고 펌프질을 하자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이별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이들을 색깔과 종류별로 분류해 보았다 실종자 가족, 공항대합실, 망명정부, 6.25 피난길, 버스정거장, 참전용사의 미망인, 9.11테러, 미아보호소, 입영열차, 이주노동자 - 등이었다

 

  이런 이별들이 서식하는 손수건에 나는 가만히 누웠다 이마와 이마를 맞댄 늙은 희로애락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마림바를 두드리며 삼바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런 손수건을 바라보며 온순한 이별만 서식하리라 생각했던 나는,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가 어떤 이별이 현상수배자의 눈빛으로 달빛 그을린 비문을 들고 찾아오면 그는 수문을 열고 눈물을 방류했다 이럴수록 나는 인간이란 이름을 감추었다

 

  개밥바라기별의 눈이 충혈된 저녁, 활주로를 이륙하려는 입양아를 향해 손을 흔들던 초로의 몇몇 사내들, 손수건에서 무리 지어 서식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출처 : 시집 『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문학의 전당, 2009.

 

 프로필 이미지

                                                  

 

l     은섭

l      `04년 시 전문지 월간「심상」신인상으로 등단

l      `06년 「경인일보」신춘문예 詩부문 당선

l      `06년 「5.18 기념재단」<문학상 작품 공모> 詩부문 당선 수상

l      `06년 제1 <정심문학상> 수상

l      `08년 「시와세계」후반기 겨울호로 <문학평론> 당선

l      `09년 제7회 강원문학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