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12월의 바캉스 / 심은섭

자크라캉 2009. 7. 2. 20:20

 

 

12월의 바캉스 심은섭 

 

 

삭풍이 수은주를 빙점아래로 밀어 내는 오후

성에가 유리창을 핥으며 햇살을 거부하는

백상어 아가리 같은 1004호 병실

바캉스를 떠날 줄무늬 가운을 입은 한 사내가

문을 들어선다 함께 따라 오며

청진기가 뱉어낸 말을 사내에게 들려 주던

여인의 어깨가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에서 떤다

창틀이 갇힌 유리알도 따라 흔들린다

침상을 밀어내고 걸어서 혼자

걸어서 나오라고

산뽕나무 뿌리를 삶아 먹이지만

신神은 그를 끌어 당기고 있다

나무젓가락 같은 흰 뼈마디가 비친

유리창 밖 처마 끝

여인이 쏟아 낸 감탄사가 고드름으로 매달리고

나목裸木에 겨울꽃으로 피어 내리던 흰 천사들이

목숨의 끈을 스스로 풀어놓던 시간

서늘한 보자기를 쓴 사내는 병실을 빠져 나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초행길로

12월의 바캉스를 떠난다

사내가 남긴 빈 지갑에 갇혀 살아 오던 아이가

180cm 흰 가운을 입고 내시경 검사실에서

사내가 지나간 그 길로 떠나려는 병동 사람들의

절망을 건져 올리고 있다

 

 

출처: 2009,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문학의 전당 시선집

 

 프로필 이미지

                                                  

 

l     은섭

l      `04년 시 전문지 월간「심상」신인상으로 등단

l      `06년 「경인일보」신춘문예 詩부문 당선

l      `06년 「5.18 기념재단」<문학상 작품 공모> 詩부문 당선 수상

l      `06년 제1 <정심문학상> 수상

l      `08년 「시와세계」후반기 겨울호로 <문학평론> 당선

l      `09년 제7회 강원문학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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