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세계제일의 세계태권도장>님의 카페에서
호박 / 이하석
비탈로만 기어올라 돌담 위에 전신을 뉜 비루한 삶이 피우는 꽃들이 어찌 저리 큰가? 끝까지 일관되게 그 노란 꽃의 논리를 따라 뻗치던 여름, 그 여름이 이룬 역사의 무늬와 힘줄이 호박의 겉과 속을 밝게 지펴놓는다. 할머니는 그 거대한 열매의 꽉 찬 속을 거슬러 오르내리는 길을 안다.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의 똥으로 채운 그 위에 씨를 놓고 흙으로 덮는 것으로 자신의 꿈의 서사를 펼쳤으니, 저 까칠까칠한 호박 넝쿨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당신의 생의 탯줄이 뻗어 나온 길을 되짚어 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익은 누런 금빛 사상을 툇마루에 덜렁 놓아둔 게 참 당당하다.
2009년 『작가세계』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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