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街 소식

계간시인세계 2007년 가을 신인상 당선취소

자크라캉 2009. 2. 10. 10:34

 

인작품 공모 당선 취소 소견서


제10회 《시인세계》신인작품 공모 당선작 발표가 난 지 얼마 안 되어 한 독자로부터 당선시인 안성덕의 「저승사자를 따라가다」가 인터넷 블로그에 나도는 「어느 인터넷 동호회 장례식장 얘기」의 개작 혹은 차용임을 알리는 메일이 전송되었다. 두 문건을 검토해 본 결과 안성덕의 「저승사자를 따라가다」가 인터넷 블로그에 나도는 이야기의 차용적 개작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가 안성덕의 응모작 11편 중 이 작품을 당선작 5편의 하나로 뽑은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발상의 신선함과 상황의 기발함, 시어 선택의 해학성 때문이었는데 그 연원이 기존의 공표된 언술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작품의 독창성에 중대한 손상이 가해지는 것이다.
응모자는 그러한 작품은 이 한 편뿐이며 블로그에 유포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시로 재구성한 것이고 그러한 사실을 각주로 밝히지 못한 점이 실수라고 해명하였지만, 우리들은 그러한 해명이 신인상 당선작이 생명처럼 지켜야 할 독창성이 유실된 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물론 시인이 시를 쓸 때는 이미 알려진 설화나 사건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소재를 변용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 행위다. 그것은 자신의 새로운 문법으로 새로운 정신을 열어가는 일이다. 거침없이 종횡하는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언어가 난무하는 요즈음 이러한 창작의 기본 정신이 흐려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응모자의 다른 작품이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당선 취소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미래의 가능성을 지닌 시인을 천거하는 일보다 창작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일로 파문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리며 이 일이 하나의 경종이 되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07년 8월 23일

                                     심사위원 - 김종해,강은교,이숭원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당선취소 유발 작품)



산신령님 이름이 뭐죠, 부음을 접하고 달려간 산악회원의 상가 영안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우린 닉넴으로 통했으니까요. 누군가 핸폰으로 산신령님의 실명을 알아냈죠. 갹출한 부의금을 넣고 막 돌아서려는데 접수처 청년 방명록에 서명을 부탁하더라고요. 김만수, 평소대로 써넣으려다 가만 생각해 보니 글쎄 상주가 우릴 무슨 수로 알아보겠어요. 그래요. 고심 끝에 솔낭구, 뒤이어 고갤 끄덕이던 산꼭대기님도 닉넴을 써넣습디다. 접수처 청년 표정 참 묘해지더구만요. 일행이 선녀와 나무꾼, 이라고 계속 써넣자, 딱 뭐 씹은 얼굴을 하더라니까요. 민망하긴 우리도 매한가지였지요. 화톳불이 그렇게 화끈거리는 줄 미처 몰랐다니까요. 쥐구멍에 그냥 대가리 콱 처박고 싶은데 일행 중 하나가 자꾸만 머뭇거립니다. 누군가 거듭 채근을 해대고, 마지못해 개미만한 글씨로 에헤라디아, 라고 써넣는 순간 마지막 남은 회원 글쎄 총알처럼 뛰쳐나갑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저승사자님 같이 가요.
쪽팔려 딱 죽고 싶더라고요.


심사평
● 김종해. 강은교. 이숭원 



예심에서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들을 심사위원들이 돌려가며 열심히 읽은 결과 대부분의 작품들이 모두 나름대로 독창적인 언어의 담금질들을 보여주곤 있었으나 그 이미지들이 작위적이어서 진정성이 문제가 되었으며 어떤 시들은 그 이미지가 너무 폭력적이기까지 하여 읽고 있는 심사위원의 눈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그 현란성은 오히려 시를 산만하게 하고 있었다. 아나모르포즈(anamorphose)를 지나치게 실천하고 있다고 할까. anamorphose는 사물의 피상적인 외양 너머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현대시의 중요한 기법이 되긴 하나, 그것이 잘 실천될 경우에는 대상 너머에 숨어 있는 생각도 못한 '울림'이 울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응모시들은 지나치게 그 기술을 사용한 결과 오히려 작위성과 산만성을 드러내기만 할 뿐 시적 울림이 없었다. 그 옛날의 시론, '이규보의 신의론(新意論)'이 새삼 생각날 정도였다.
그러한 시의 숲길을 거쳐 최종으로 남은 작품은 「금」외 8편, 「꽃을 바라보는 법」외 9편, 「링거 플러그」외 11편, 「조용한 가족」외 9편, 「속, 편안합니다」외 10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시들을 보다 심도 깊게 토의하며 재삼, 재사 돌려가며 읽었다. 그 결과 이 중 「금」외 8편, 「링거 플러그」외 11편의 시들은, 그 중 몇 편은 그 언어를 다루는 솜씨, 그리하여 '울림'을 마련하는 솜씨 등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으나 대체로 그 시적 수준이 고르지 않아 대상으로 뽑기에는 적당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며, 「꽃을 바라보는 법」외 10편은 그 시적 구성이 만만치는 않았으나 언어와 필연성과의 관계, 울림과 시적 메시지와의 관계, 성찰성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두 시인의 시편들은 <<유성애의「조용한 가족」외 9편,>> 「속, 편안합니다」외 10편이었다. 이 중 그 알레고리성이 뛰어나며 여운 내지는 울림이 있고, 전편의 시적 수준이 고를 뿐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게까지 만드는 「속, 편안합니다」외 10편을 대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인에게 당부하고 싶 것은 자신만의 그 '틀'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문운을 바란다. 그러나 나머지 네 시인도 언젠가는 문단에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정진하시기를 빈다. -강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