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림초교26회동창회>님들의 카페에서
숭례문 / 강인한
이 나라에는 숭례문을 무서워하는 사람들과
숭례문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소
집을 한 채만 가지고 있거나 집이 한 채도 없는 사람들은
숭례문을 무서워하고
집을 두 채 이상 가지고 있으며 땅이 많은 사람들은
숭례문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소
숭례문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숭례문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무섭지만
숭례문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숭례문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섭지 않소
제1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2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3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4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5의 사내가 촛불을 들고 숭례문으로 걸어가고 있소
제6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7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8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9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10의 사내도 촛불을 들고 숭례문에서 걸어오고 있소
제11의 사내가 촛불이 되어 숭례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소
제12의 사내가 촛불이 되어 숭례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소
제13의 사내가 촛불이 되어 숭례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소
길은 지금 숭례문으로 뚫려 있고 숭례문은 분신자살을 하고 거기 이제 없소
촛불을 들고 걸어가거나 촛불이 되어 걸어오는 사람들 가슴 속엔
불타서 주저앉은 숭례문 한 채씩이 꺼멓게 들어앉아 있소
<시와상상> 2008년 가을호
강인한(姜寅翰) 시인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 국문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같은 해 5월 공보부 신인예술상 시조 당선. 시집 『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가 있음. 37년간 중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년 2월 명예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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