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街 소식

대산창작기금 심사평

자크라캉 2008. 8. 25. 10:25

 

대산창작기금 심사평
<시부문 심사평>

대산창작 기금 시 부문 심사는 문인수, 고형렬, 김승희 시인을 심사위원으로 하여 2008년 6월 16일 1차 회의를 가졌다. 시 부문에 총 160명의 시인들이 지원신청을 하였는데 등단 10년 이하의 각 시인들의 응모작이 책 1 권 분량의 미발표작(단행본을 묶여지지 않은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응모된 총 작품 수는 놀라운 분량이라고 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일단 우리 시단의 젊은 시인들의 왕성한 창작 열의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각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배분하여 일차 심사에 들어갔다. 2차 심사는 각 심사위원들이 읽은 작품들 중 그 중 우수한 10편을 뽑아 총 30편을 서로 돌려 보았다. 3차 최종 심사는 7월 15일에 열렸으며 각 심사위원들이 최종심 대상자로 5편씩을 제출하였고 그중 중복 추천된 표가 많은 시집부터 지원대상자로 선정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심사위원 중복추천이 가장 많은 시집으로 <간빙기>, <우물>, <황태> 가 대산 창작 기금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전체적 총평을 하자면 160명의 젊은 시인들의 시세계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고 번역투의 문장, 산문시 경향, 필연성 없는 외래어의 남발과 산만한 진술구조 등이 너무 많아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이러한 경향들이 물밀듯이, 이구동성으로, 유행의 물결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어서 시의 다양성이 심하게 위축되는 현상이 있다”(문인수)고 지적되었다. 또한 “시를 쓴다는 것은 ‘나는 다르다’라는 선언인데 그것이 너무 안보이고 세계관이 없고 자신의 고유한 경험보다는 주로 2차 텍스트에 기대고 있어서 ‘내 목소리가 없네’ 라는 자각이 참 필요한 시점”(고형렬)이라고 진지하게 비판되었다.

<간빙기>는 스케일이 크고 막힘없는 제재와 무리없는 솜씨, 일관된 주제 의식과 개성적 문체가 돋보였으며 소재가 전통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모더니즘적 수법이 가미되어 독특한 자기 세계를 보여준 점이 평가되었다. <우물>은 착상의 기발함, 무리 없는 소화력, 재미있는 전개가 돋보였고 가족사적 주제나 일상의 주제가 많은데 그것들을 잘 내면화하여 시적 긴장을 잘 살려낸 점이 높게 평가되었다. <황태>는 문체의 일관성, 작품의 고른 수준, 진술 구조나 완결성에 무리가 없는 솜씨가 돋보였고 자연과의 대결 구도를 보이면서도 안정감 있는 시 세계가 좋았으며 우리 서정시의 전통 기법의 맥을 드물게 이어가는 시인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 세 편을 지원 대상자로 선정하는데 심사 위원 전원이 합의하였다. 그 외에도 <비경>, <나의 알전구>, <세 친구와 삼겹살>, <죽음 속에 눕다>, <딕스의 창녀들>, <모든 소멸하는 것들은 중력의 시간을 가진다> 등이 우수작으로 더 논의되었으나 심사위원 1인만의 추천을 받아 선정되지는 못하였다. 미래타타(未來他他)!(김승희)

심사위원 : 고형렬, 김승희, 문인수

 

<소설부문 심사평>

<안녕, 플루토>는 본심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가장 먼저 의견일치를 본 작품이다. 황금빛 유리로 번쩍이는 50층짜리 아파트 옆에 낮게 자리한 명왕3동.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공원으로 재개발되어 떠나야 하는 그곳 주민들의 다양한 삶을 선명하게 그려놓았다. 구질구질한 동네의 그만그만한 삶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해학이며, 적지 않은 수의 등장인물 각각의 개성을 살려낸 공력이 만만치 않은 필력을 느끼게 한다. 사실주의적 관점에 충실한 작품인데 그 안에 시공간을 뛰어넘는 다른 이야기를 무리 없이 섞어놓아 이야기의 지평을 넓혔다. 한 장의 끝이 다음 장의 시작과 맞물리는 배치도 길고 짧은 장과 장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준다.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명왕성처럼 세상 한 끝에 붙어 있지만 조만간 사라질 처지에 놓인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화려함과 소비가 미덕이 되어버린 이즈음엔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소재인데도 칙릿 소설이 범람하는 시류에 아랑곳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써낸 작가의 뚝심이 미덥다.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외 5편은 사랑이라는 환상의 신랄한 이면을 보여주면서 역으로 ‘아주 특별한 연인’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인 여자와 MBA를 마치고 다국적 기업에 다니는 신랑감, 일상이 답답해서 단 한 번의 여행을 감행한 30대 유아교사와 ‘남을 위해 내 무엇을 떼줄까, 이 세상을 나아지게 할 만한 훌륭한 사람을 위해 어떻게 헌신할까’ 하는 것 이외엔 고민할 게 없을 만큼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 유학지인 영국에서 대학교수가 되고 유니세프 등의 일에 관여하는 한인 여자와 더없이 성실하며 착한 그녀의 영국인 남편, 대기업이 지방에 세운 공장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여자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성실하기 짝이 없는 연인 등 몇 쌍의 연인을 다룬 각각의 단편 다섯 편이 모여서 연작을 이룬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건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결혼이라는 제도의 이면에서 행해지는 저울질, 사랑이나 헌신이라는 외피의 안쪽에서 들끓는 또 다른 욕망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가리봉 양꼬치>외 10편은 단편소설의 작법에 충실한 작품들이다. 정련된 문장이며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인물들을 각각 그 직업의 특성을 깊이 살리면서 그려냈다는 점에서 기본기를 탄탄히 쌓은 작가의 만만치 않은 공력이 느껴진다. 몇몇 작품의 바닥에 깔린 트라우마가 비슷한 양상이라는 점은 지적되었으나, 마지막까지 논의가 되었던 작품이다. 선정 대상이 두 사람으로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아쉽게 내려놓아야 했다.

그밖에 <소설 규합총서>와 <뭄>이 본심에서 거론되었다. <소설 규합총서>는 주인공의 삶에 비해 작가와 편집자 사이에 오간 메일의 비중이 우선 눈에 띄었다. 그게 서사의 전략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정작 본이야기를 끌어나갈 힘이 부족해서 아니었는가, 생각될 정도로 과도한 분량이었다. 멕시코 감옥에 갇힌 한인 이야기를 다룬 <뭄>은 참신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과 정교하지 않은 전개가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예심과 본심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장편과 중단편들을 읽었다. 지난해보다 눈에 띄는 작품이 줄어들었다는 언급도 있었지만, 출판시장이 불황이라는 이즈음에 한 권 분량의 중단편이나 장편을 지속적으로 써내는 창작열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한국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자기만의 방에서 묵묵히 정진할 응모자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구효서, 이혜경, 정 찬

 

<희곡부문 심사평>

2008년도 대산창작기금 희곡 부문은 총 11인의 작가와 21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에 임했다. 신진작가를 발굴 양성한다는 취지에 따라 등단 10년 이하의 문인을 대상으로 하고 작품성과 작가의 장래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기준 아래 심사를 거친 결과 최창근의 <봄날은 간다>가 지원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심사위원 이윤택과 김아라는 작품을 양분하여 예심 절차를 밟았고 1차로 최창근의 <봄날은 간다>, 김성민의 <개고기 숲>, 최명숙의 <모텔 피아노>를 선정하였으며 2차 협의를 거쳐 최종작을 선정하였다.

<개고기 숲>의 경우 극중극이라는 장치를 통해 독립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성적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의 병리적 현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의도가 의욕에 넘치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심도 있는 언어묘사와 두 개의 독립된 구조가 하나의 결말을 통해 선명한 작가의 소리를 내며 마침표를 찍는 데는 아쉬움을 남겼다.

<모텔 피아노>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유연한 장면의 흐름이 읽는 희곡에서 보여지는 희곡으로 한 단계 독자의 상상력을 상승시켜 놓는 미덕을 지닌 희곡이다. 피아노라는 타악의 상징성이 억압과 부자유의 무기로 대체되는 설정은 주제의식을 드러내기에 참으로 절묘하고 탁월한 선택이기도 하다. 작가는 연극의 시청각성에도 매력적인 지문을 묘사하는데 다시 한 번의 개작을 통해 갈등의 날을 탄탄히 세우고 은유적이며 함축적인 언어를 구축한다면 매우 훌륭한 희곡 한 편이 탄생하리라 기대된다.

<봄날은 간다>는 마치 수묵화 한 점을 볼 때의 매력처럼 행간의 여분이 주는 상상력과 수사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와 공간구성을 지닌 희곡이 당선작이 된 것은 탁월하다라는 생각보다 다르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마치 봄날의 꿈 한 편 접하듯 가볍게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 희곡에는 생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극작에 있어서의 진솔함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함축적이며 시적인 언어는 그 누구의 것과도 닮아있지 않으며 너무나 단순해서 흉내 낸 흔적도 없다. 연륜을 참작하면 참으로 놀랍고 용기 있는 독창성이다. 또한 이 희곡은 형상화하려는 연출가에게 형식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열린 희곡으로서의 장점이 돋보인다. 앞으로의 작업들에 충분히 기대를 걸만한 굵직한 재목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서는 작품이었다.

심사하면서 느낀 것은 11명의 작가, 21편의 작품을 통 털어 독특하고 기발하며 엉뚱한 상상력과 거친 호흡의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제의식에 치인 나머지 희곡 쓰기의 정석에 치우쳐 있는 작가들의 강박관념에 대하여 희곡은 무대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므로 자신의 사유의 흔적이 자신만의 공간적 상상력으로 좀 더 자유롭게 펼쳐지기를, 그래야만 문학으로서의 연극이 가능하다는 조언을 남기고 싶다.

심사위원 : 김아라, 이윤택

 

<평론부문 심사평>

2008년도 대산창작기금 평론 부문에 응모한 12명 작품집의 언술은 자못 현란하다. 1980년대 비평의 경직성과 90년대 비평의 일상성을 동시에 넘어서서, 21세기적 지평을 모색하려는 열망이 강하게 돌출되어 있다. 의욕이 넘쳐, 희랍신화에서 출발하여 칸트와 마르크스와 하이데거, 벤야민, 아도르노, 블랑쇼를 거쳐 푸코, 라캉, 들뢰즈, 지젝, 가라타니 고진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독서 역량을 과시하는 모습은 미개지를 찾아 광야를 달리는 카우보이를 연상케 한다. 비평가의 열정이 이처럼 거칠 것이 없으니 대중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그 기세에 경탄을 보낼 만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담론은 독자의 위상이나 수준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21세기의 소설이, 어깨에 힘을 빼고 거룩한 거대담론에서 내려와, 대중의 일상사를 진지한 담론의 영역으로 수용하거나 엽기적 환상을 통해 인간의 본원적 생리를 드러내는 것은 가상체험에 길들여진 21세기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이려는 방법적 모색이다. 21세기의 시가, 고요한 관조의 누각에서 내려와, 거침없는 입담과 상상으로 막힌 벽을 뚫으려 하거나 더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여 현상의 이면을 통찰하는 노력을 보이는 것도 새로운 독자를 시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여기에 비해 비평은 어떠한 신국면을 펼쳐내는가? 소통의 매개 역할을 도외시한 현학적 언술, 복잡한 구문으로 얽힌 다변적 문체, 외국 인명의 주석으로 얼룩진 비주체적 해석은 정당한 신국면의 요소로 편입될 수 없다. 비평가의 독서와 학습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해석과 평가를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비평가의 본업인 작품의 해석과 비평은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를 포함한 비평의 독자를 위해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차 독해를 통해 네 명의 작품집을 선정하였다. 네 편의 작품집은 모두 대단한 기량을 지니고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문학 없는 문학>과 <들린 자들의 역사와 윤리>는 동시대의 다양한 소설을 충실히 읽고 문학적 징후와 형상을 밝혀내려는 집요한 천착을 보여준다. 앞의 작품집이 소설이 삶과 맺고 있는 복합적 성격을 밝혀내는 데 비해 뒤의 작품집은 소설의 역사성과 윤리의식을 구명하는 데 주력한다. 전자는 해박한 독서 체험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후자는 성실한 학문적 탐구의 자세를 보여준다. <웃음과 망각의 수사학>은 이론의 틀을 먼저 앞세우지 않고 작품에 맞는 분석 방법을 그때그때 적절히 구사하는 능란함을 보인다. 그러한 시선의 자유 때문에 비평가로서의 입론이 약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경수의 <문학 너머의 문학>은 당대의 문학을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건강성과 전 지구적 안목에서 우리 문학을 바라보는 유연성을 함께 갖추고 있다. 비평가로서의 윤리의식과 작품분석의 점착력이 돋보인다. 비평은 작품의 그림자지만 그림자가 작품의 형상을 더 효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비평적 자의식이 신뢰를 준다. 이경수를 포함한 12명의 젊은 비평가가 모두 우리 비평의 미래를 힘차게 밀고 나갈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이경수가 그들을 대표하여 창작기금을 받게 된 것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김명인, 이숭원

 

<아동문학부문 심사평>

정서적 안정과 그리고 발칙함

작품 심사는 거의 한 달에 걸쳐 진행됐다. 6월 17일 1차 모임을 가지면서 작품 심사 방식과 2차 심사 날짜를 정한 뒤 심사할 작품을 받았다. 3인의 심사위원은 17일간의 1차 심사에서 장르별 각 2작품씩 선별하였고, 2차 심사에 오른 작품을 읽고 난 뒤 장르별 각 1작품씩 선별하여 7월 15일에 다시 모여 최종심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2차 심사대상에 오른 동시는 <그냥 제비꽃>, <은행잎 손님>과 <배꼽>이었다. <그냥 제비꽃>은 자연을 소재로 한 시로 자연의 특성을 매우 깊이 이해하고, 이해한 대상을 보다 재미있게 구사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시에 대한 주제의식이 분명해 꿋꿋한 맛도 있었다. 그러나 후반부의 ‘아빠의 죽음’에서 죽음에 대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 점이 안타까웠다.

<은행잎 손님>은 시를 다루는 능력과 기교가 매우 뛰어났다. 흔하디흔한 소재도 그의 손에 걸리면 반듯해졌고, 의미 또한 쏙쏙 가슴에 와 닿았다. 어떻게 말하면 얄미울 정도로 매끄럽고 완벽해 오히려 그게 흠이 될 만했다. 시의 구조며, 비유며, 소리시늉이며 짓시늉말들까지 너무도 깔끔했다. 내심, 시라는 게 자칫하면 이렇게 가공될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이 얼핏 들었다. 그래선지 시가 갖는 또 다른 매력인 인간미나 심장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성의 결핍이 노정되었다.

그런 반면에 <배꼽>은 가족을 배경으로 하는 가족 간의 따스한 사랑과 이해와 배려가 잘 배어난 정서적 안정감이 있는 시였다. ‘청년성’은 부족했지만 그 빈자리를 차분하고 넉넉한 정으로 채워 주었다.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과 생명을 사랑스럽게 대하는 눈길과 마음들 때문에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는 인정어린 구성원들을 훤히 보는 듯해 마음이 편했다. 더구나 사물의 의미를 깊이 있게 천착해 나가는 힘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점이 든든했다.

황무지로 방치되어 왔던 청소년문학이 근래에 이르러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청소년문학을 어른의 문학에서 아이들이 보기 곤란한 것을 삭제하고 문장을 쉽게 고쳐 쓴 것 정도로 이해하거나 어른들의 청소년기를 소재로 쓴 성장소설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하는 건 자칫 청소년문학을 망칠 가능성이 크다.

어른들이 보는 것의 대부분은 청소년들도 본다. 더구나 인터넷이 일반화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청소년문학을 소재나 주제를 제한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청소년 문학의 특성은 소재의 폭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제 막 독립된 인격과 자기세계를 형성해가기 위해 고투하는 청소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데서부터 온다. 그것은 문장을 쉽게 쓰는 것하고도 큰 상관이 없다. 또 하나 문학적 특성을 든다면 본격소설과 장르소설의 구분이 엄격한 성인문학에 비해 청소년문학은 그 구분이 그렇게 엄격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문학에서는 장르소설의 다양한 기법들을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빨간 신호등>에 담긴 5편의 단편은 한마디로 발칙하다. 발칙하다는 것은 청소년소설의 청소년소설다움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어른들이 금기시할 법한 소재나 주제에 접근하여 그것이 청소년 주인공에게 얼마나 핵심적인 문제인가를 보여주기도 하고, SF적 기법을 도입하여 청소년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계의 절망적 모습을 날카롭게 드러내기도 한다. <빨간 신호등>의 이러한 발칙함이 이제 출발점에 있는 청소년문학의 정체성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 권영상, 김진경, 이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