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당선작

북청(北靑) 물장수 / 김동환

자크라캉 2008. 7. 24. 14:16

                                          사진<다시 처음으로>님의 카페에서

 

청北靑 물장수 / 김동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쏴 ―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동아일보」, 1924.10.24-

 

[시평]

 오늘날처럼 각 가정에 수도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물장수들이 새벽마다 물을 공급해 주었다. 그들은 주부들이 일어나 부엌일을 시작하기 전에 물을 가져다주어야 했으므로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원에서의 하루가 횃대에서 목청 좋게 울어 젖히는 계명성(鷄鳴聲)에서 시작되듯이, 도시의 새벽은 부지런한 북청 물장수들의 삐걱거리는 지게 소리와 물 붓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것이다.

물장수는 아직도 곤한 잠에 빠져 있는 도시인들의 꿈길을 밟고 온다. 날마다 거의 비슷한 시각에 찾아와 말없이 물만 붓고 떠나가는 북청 물장수의 행동에 익숙해진 도시인(혹은 화자)은 물장수가 독 안에 붓는 물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어난다. 그때의 화자의 정신은 마치 머리에 찬 물을 뒤집어 쓴 듯한 것처럼 맑고 시원하다. 제 할 일을 마친 물장수는 갓 깨어난 화자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말없이 떠나간다. 단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인의 아침 풍경이 매우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북청 물장수의 근면하고 과묵한 행동에 화자는 친밀한 감정을 갖게 된다. 현실과 꿈이 채 구분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물장수를 부르지만, 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음 집에 물을 날라다 주기 위하여 삐걱삐걱 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서로의 인간적 만남이 없으면서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물장수의 행동과 그에게서 인간적 친밀감을 느끼는 화자의 심정을 담담하게 그려 내고 있다. 화자에게 북청 물장수는 단순히 생활에 긴요한 물을 공급해 주는 장사치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청신한 새벽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맑고 활기찬 아침을 마련해 주는 물장수를 기다려 만나보고 싶어 하는 화자의 마음이 깔끔하게 제시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