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천경 교무의 원불교와 가정 이야기>님의 카페에서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
만능사 제 2호점 / 김원경
홍릉수목원 가는 길목에는 만능사 2호점이 있지요 그곳은 못 고치는게 없어요 어긋난 열쇠, 끊어진 가죽벨트, 닳은 구두 굽, 싸구려부터 명품까지 모두 다 취급해요 심지어는 나쁜 습성들도 고쳐 주는데, 고칠 수 없는 것도 이곳에 오면 고칠 수 있다나 뭐라나 혹시 예고편이 나오고 본편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를 당신은 본 적이 있나요
한때 비포장 도로의 바람으로 살던 장씨가 딱 맞는 아버지의 신발을 신은 이야기예요 아버지의 신발을 신지 않으려고 단 한번도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은 그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순간,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되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지요 신발이 맞지 않아도 괜찮아요 만능사가 있으니까요 발을 자르거나 늘려서 맞춰준다지요 거리 가로수는 다리가 잘릴까 봐 잎을 돌돌 말아 동면에 들어갔어요 정착한다는 것은 바람의 멱살을 잡아다가 옷걸이에 걸어두는 일인가 봐요
포개진 자화상*이 두 겹으로 분열되는 밤, 만능사 주인은 고치다 만 미스 김의 하이힐을 매만져요 양 뒤축이 바깥으로 비스듬히 닳아있는 하이힐을 보며 이 닳아 빠진 살들아, 아, 아, 하며 구두뒤축에 깊고 단단하게 박힌 금속의 심지를 뽑아내곤 새 것으로 갈아 끼워요 망치질이 어긋날 때마다 금속이 말향고래처럼 신음 소리를 내요 만능사 주인은 만능해서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애인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정작 자신의 변장이 서투르다는 것은 잘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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