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2007년 중앙일보신인문학상 당선작]-창고大개방 / 방수진

자크라캉 2008. 6. 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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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천남중고23/15동창회>님의 카페에서

 

[2007년 중앙일보신인문학상 당선작]

 

고大개방 / 방수진

 

1
 선전물이 붙는다 오늘 하루뿐이라는 창고大개방

 준비 없는 행인의 주머니를 들썩이게 만든다 간혹
 마음 급한 지폐들이 앞사람 발뒤꿈치를 따라 가고 몇몇은
 아예 선전물처럼 벽에 붙어버린다
 떨어진 상표딱지, 올 풀린 스웨터, 뜯어진 주머니, 비뚤거리는 바느질까지
 다들 제 몸에 상처 하나씩 지닌 것들이다
 습기 찬 창고에서 울먹이는 소리는 여간해선 지상으로 들리지 않는 법
 
 2  
 조금은 잦은 듯한 창고개방이 우리집에도 열린다
 일 년에 다섯 번 혹은 예닐곱으로 늘어나기도 하는 그날엔
 아버지 몸에서 하나 둘씩 튀어나오는 물건들을 받아내느라 힘들다
 하지만 나는
 집안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냄비며 플라스틱 용기들이
 조금씩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때론, 손끝에서 퍼진 그 울먹임이 아내의 머리를 찢고
 다리에 멍울을 남기고 깨진 도자기에 발을 베게 만들지만
 아버지의 창고 그 곳에서
 누구도 딸 수 없었던 창고의 자물쇠가 서서히 부서지고,
 서로 쓰다듬을 수 없어 곪아버린 물집들이
 밤이면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제 심장소리에도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3  
 아직, 연고 한 번 바르지 못한 상처들로 창고가 북적거린다
 창고의 문을 열어두는 이유는 
   더는 그것들을 보관할 수 없어서가 아니다
 서로 다리 한 쪽씩 걸치고 있는
 우리들의 절름발이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몇 번의 딱지가 생기고 떨어졌어도
 한번 베인 자리는 쳐다보기만 해도 울컥하는 법이지
 그래서 창고 개방하는 날
 거리에는 저마다의 창고에서 빠져나온
 우리들이,
 눈송이처럼 바닥을 치며 쌓여가고 있었다

 

[방수진 시인]

 
1984년 부산 출생

경희대 국문과 4년 휴학중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