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종 / 심은섭 , 2007년 <시인정신> 겨울호

자크라캉 2007. 4. 15. 17:57

 

 

                 사진<새롬>님의 블로그에서

 

   / 심은섭

 

 

 

종이 울면 종이다 울면 종이 아니다

종이 울지 않으면 종이 아니다

울지 않으면 종이다

울리는 종이 되고 울지 않는 종이 되고

덤프트럭이 짓이기고 간  들고양이의

유골을 슬퍼하는 종이라도 좋고

혹한에서 살점을 피워낸 동백나무의 종이라도 좋다

종이고 싶다

폐차장 폐타이어의 검은 종이 되고

완고한 겨울에 맞서 분신한 연탄재의 종이 되고

문학의 종이어야 하고

시간의 종이어야 하고

木馬의 방울소리 내는 종이어야 하고

허공으로 날아간 그네의 이유를 말하는 종이어야 하고

이름 잊은 당신의 종이어야 하고

이끼 낀 돌의 종이고 싶다

빗소리 아우성치는 캄캄한 어둠을 걷어낸

종이 되지 않았을 때

종의 귀를 잘라버렸을 때

봄이 와도 꽃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고

하늘이 내게로 오지 않았다

 

 

 

2007년 <시인정신>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