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품들

줄장미 붉은 손바닥 외 4편 / 최란주<서울디지털대학교 제1회사이버문학상>

자크라캉 2007. 2. 25. 17:41

사진<나만의 공간>님의 블로그에서

 

서울디지털대학교 제 1 회 사이버문학상 발표


6000여 편이 응모한 서울디지털대학교 제 1 회 사이버문학상이 막을 내렸다. 심사위원인 고은 시인, 이재무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오봉옥 시인, 손택수 시인, 길상호 시인 등은 당선작으로 최란주의 ‘줄장미 붉은 손바닥’ 외 4편을, 가작으로 정상조의 ‘등 푸른 추억’ 외 5편을 선정했다. 2007년 서울디지털대학교 제 1 회 사이버문학상은 응모자가 848명, 응모작품은 6000여 편에 달했다. 이는 서울권 일간지 신문의 신춘문예를 상회한 수치이다. 뜨거운 관심에 감사드린다. 당선작은 500만원의 상금과 함께 계간 <시작>에 작품게재, 등단 시인으로 인정되며, 가작은 200만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시상식은 2월 22일(목) 오후 6시 서울디지털대학교 2층 회의실에서 열린다. 


당선작 - 최란주 ‘줄장미 붉은 손바닥’ 외 4편

가작 - 정상조 ‘등 푸른 추억’ 외 5편



예심 심사위원-오봉옥(시인,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손택수(시인), 길상호(시인)

본심 심사위원-고은(시인, 심사위원장), 이재무(시인, 『시작』주간), 유성호(문학평론가, 한국교원대 교수)



* 당선작 - 최란주


장미 붉은 손바닥  / 최란주


  초여름 아침 등촌동 자동차공업사 옆 담벼락을 지나는데 줄장미 붉은 가시가 홑겹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출근길 발걸음이 함부로 뻗친 가시에 걸려 잠시 허둥거렸다. 제 毒手에 찔린 줄장미 꽃모가지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옷깃을 움켜 쥔 줄장미 독 오른 손바닥들이 옛 애인을 붙잡고 늘어지던 내 넝쿨손 같아 도망치듯 전철역까지 줄행랑을 쳤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바닥이 십년 전처럼 까칠했다. 젠장, 외로움에 긁히고 그리움에 긁히는 게 사랑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은 조금씩 긁힌 손바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쉽사리 상처를 보여주지 않는다. 악수가 따듯한 건 상처가 상처를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손바닥을 펴면 아직도 털어지지 않는 붉은 가시들, 종일 손바닥이 따가웠다. 태양의 모가지가 뭉툭뭉툭 지고 있었다.



 카페 라 캄파넬라


  큐빅이 박힌 하이힐을 신고 표범무늬 미니스커트에 엉덩이를 걸친 女子 살갗이 슬쩍 보이는 반라의 시스루를 두르고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흘리며 서 있는 女子 얇고 가느다란 시선만 던져도 울퉁불퉁 심장이 뜨거운 사내들이 침 삼키며 눈독을 들이는 女子 뒤로 다가가 허리를 덥석 안아 버릴까 얇은 시스루를 확 벗겨 버릴까 이런, 그 女子의 입술에서 따듯한 영혼이 실핏줄처럼 퍼져 나가게 돌려 버릴까 젠장, 숨 막히게 맑은 투명한 에스라인 허리를 손가락 끝으로 간질여볼까 혀끝으로 꼭지가 짓무르도록 핥아 볼까 아아, 女子의 입 속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다면 배가 부풀어 오를까 아니면 스커트가 벌렁거릴까 사내들이 동공이 커진 눈동자를 번뜩이며 다가온다 이런, 스커트 밑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 부드러움은 무엇인가 이봐, 눈 큰 겁쟁이, 축제 준비는 다 됐니? 자, 그럼 실컷 만져 봐, 뇌쇄적인 女子의 몸매, 이런 와인 잔은 아마 처음일 걸?



늦겨울


  느그들은 나 죽기 전에 시집들 안 갈래 요새 아그들은 참말로 애인들도 잘 사귀드만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저 시랭이 마을 사는 끝자는 아들을 셋이나 낳고도 그 머이메와 끝내뿔고 딴 서방을 꿰차고서 딸 하나를 낳아서 알콩달콩 잘도 키우고 살드그만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넘들은 시방 손주를 장개보낸다고 청첩장을 뿌리고 난린디 나는 딸 셋 중 하나도 못 치워서 복장이 터져뿔것다 참말로, 근디 시방 어디여, 여즉 사무실이라고, 그놈에 사무실은 매미맹키로 붙어서 끄륵끄륵 일만 해싸면 무슨 똑바라진 사내자식 하나 엮어준다디 인제 그만 일을 끝내뿔고 싸게싸게 나와서 술 한 잔 먹어제끼고 맘에 든 사내가 있거던 거그서 그냥 모른척 자빠져쁘러 지도 사람인디 나 몰라라 하것냐 뽀뽀는 안 허더라도 업어다 이불에는 눕히지 않겄냐 그렇게 갈켜줘싸도 그노메 좋은 머리는 어따가 쓰는겨 초등핵교도 안 댕긴 명옥이도 남재 만나서 잘만 살더그만 대학까정 나온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잔소리라 생각허들 말고 퍼득 정신차려 시간이 없당께 고놈이 고놈잉께 인제 고만 고르고 화딱 소매를 끌던지 바지가랑이를 잡아댕기든지 하랑께 술 몽땅 묵고 자빠져쁘러 고것이 최고여 그라고 나중 지가 안 그러고 고놈의 술땀시 그랗게 되야부렀서야 하면 그만이랑께



땡볕 법정


  나는 당신의 마음을 홀린 죄로 땡볕 법정에 불려나와 재판을 받게 되었으니 그리움을 방사한 죄가 크다. 이에 법정구속을 명한다. 청포도 푸른 그늘 아래 남아있는 키스자국에 대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고,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다른 이에게 도주할 우려가 있기에 오늘 이 시간부터 나를 추억 속에 감금하니 내가 가야할 장소는 후박나무가 내려다보이는 당신의 창문이다. 넓은 잎사귀 갈피마다 채워진 당신이란 책장을 넘기며 나는, 사랑이란 누구를 홀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이를 위해 미소를 머금는 것임을 알 때까지 나는, 당신이란 글자의 행간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땡볕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네모난 겨울

   -법원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육법전서 너머로 보이는 거리에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 장 남은 달력 위로 다급하게 달려드는 발자국 밑으로 마른 햇볕이 끼어든다. 오후 네 시의 아찔한 구멍 속으로 비둘기들이 들락거린다. 법원입구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툰드라꽃배추가 미색의 소환장을 던진다. 덜컹 내려앉는 사람들의 놀란 가슴을 짓누르는 판결문 낭독소리. 판결문은 양자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돌아서는 고소인의 뒷모습과 구속된 피고인의 뒷모습은 동전의 양면처럼 닮아 있다. 완벽한 증거들로 가득 찬 네모난 형사공판조서 속에서 각진 얼굴들이 빠져나오려고 아우성이다. 법원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속에서 태극기는 여전히 높이높이 바람에 펄럭인다.

 

 

 

본심 심사평


  응모자들의 시편은, 담론적 집중성을 보이는 어떤 경향이나 세태에 편승하기보다는, 각자의 경험적 구체성을 바탕으로 언어 미학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욕을 두루 보여주었다. 편차가 심하기는 했으나, 읽을 만한 시편들이 많았음을 기록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개성과 완결성의 황금분할을 통해 우리 시의 미래를 개척해가려는 젊은 언어들의 긍정적 면모라고 생각된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분들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김재현, 김혜영, 이점순, 정상조, 조정숙, 최란주 씨(가나다 순) 등 여섯 분의 작품에 특별히 주목하였다. 이분들의 시편은 안정감과 패기, 익숙함과 낯섦, 산문 지향과 운문 지향, 서정의 구심과 원심 등 우리 시의 다양한 미학적 충동과 방향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어, 심사위원들로서는 어느 분이 당선자로 뽑히더라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만큼 작품적 성취가 균질적이고, 충분한 습작 시간을 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안정된 언어 구사나 주제의 진중함보다는, 시적 언어의 활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는 언어를 높이 사서, 최란주 씨의 작품을 전원 합의하여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최란주 씨의 작품들은, 비록 줄글 형식의 시편들이라 운율적 고려에서는 다소 취약하였으나, 활자의 안쪽에 만만찮은 시적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삶의 만화경(萬華鏡)을 두루 보여주는 활달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또한 일상의 활력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생의 상처며, 부드러움이며, 사랑을 노래하는 품과 격이 매우 미더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험적 구체성 속에 심미적 감각을 살려 재생하고 배열하는 언어적 힘이 밀도 있게 관찰되었다. 신뢰와 축하를 얹어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심사위원들로서는, 앞으로 더욱 젊고 패기에 찬 젊은 언어들이 우리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해오기를 바란다. 이번에 당선되지 않은 분들도 더욱 정진하기를 바라고, 거듭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