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품들

월담의 공식 / 김산<문자웹진> 2006년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자크라캉 2007. 2. 5. 16:00

 

                              사진 <디어다음 디카갤러리>에서

 

 

 

김산 / 월담의 공식 / [문장웹진] 2006년 최우수 작품 수상작

 

담의 공식 / 김산

 

 

 

 스물두 살에 야간 여상을 마친 봉자 누나가 첫 봉급을 쓰리 당했다

 

 울음은 몇 갈래로 터져 나왔다 오장 근처를 휘돌던 설운 마음은 먼저 목구멍을 타고 올랐다 분노는 휘발성이 강해 가녀린 팔뚝으로 내려가 주먹을 불끈 쥐게 했으나 곧 스르르 풀렸다 애증의 덩어리들은 눈 코 입에서 짠 분비물로 흘렀다 베개가 흥건해지면서 새롭던 각오는 축축해졌고 희망은 이불을 비집고 빗소리를 찢으며 처마에 기댔다 기침까지 섞인 울음은 오토바이 쓰리꾼처럼 급커브를 틀더니 급기야, 우리집 토담벽을 넘었다 울음은 감잎을 몇 장 들었다가 간장독을 폭삭 깨고 살금살금 기어와 벌어진 곳간의 문을 삐거덕 열었다 터진 쌀자루에서 불어터진 밥알들이 쏟아졌다 아! 이 정체불명의 도둑은 어찌하여 내 귓바퀴를 넘어서는가? 悲인가, 飛인가, 수학 문제집의 도무지 풀리지 않는 根의 공식처럼,

 

 토닥토닥, 봉자 누나네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빈 독을 메우는 雨

 

 

 

<<2006년 (웹진 문장) 연간 최우수작품상>>

 

 

<초발심으로 끝없이 써내려 갈 것>

 

십여년 전 모포를 뒤집어 쓰고 작은 전구가 달린 펜으로 시를 쓰던 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시를 빙자한 넋두리였던 것 같다. 국문과를 다녔던 후임과 밤새 시에 대한 소통을 하며 잡초와 삽과 총과 탄피 같은 사물들에게 자꾸만 눈이 가곤 했다. 되든 안 되는 보이는 모든 것을 언어로 담으려고 했다. 더블백에 시집 열 권과 습작시 백 편을 넣고 위병소를 나섰을 때 나는 당돌하게도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기대했던 응모에서 낙선했을 때도 밤새 술을 마시며 그래도 나는 시인이다, 라고 다독거리며 울었다.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무감각해졌다. 이미 나는, 중독이었으므로. 밥을 먹을 때도 변기에 앉아 있을 때도 시의 금단현상을 느꼈다, 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외롭고 춥고 배고플 때 내 곁을 지켜준 것은 시였다. 우연찮은 기회에 응모를 하고 뜻하지 않게 주간과 월간을 거쳐 연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소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호명하고 싶은 분들이 너무나 많다. 처음 졸시를 選해주신 송호필 시인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숙고 끝에 추천해 준 작품들이 가짜가 아님을 오래도록 증명해 보일 것을 다짐합니다. 시산맥의 기둥이신 문정영, 이영식, 박남희, 서상권 시인님께 감사드리고, 나의 졸편들에 활기를 넣어주기 위해 격려와 질책을 아낌없이 해준 이동호 형님과 임재정 형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 다 부를 수 없는 시산맥과 시월 식구들 감사합니다. 평생 같이 할 술친구 경모야! 고맙다. 내게 있어 가장 서정적인 언어인 아버지, 어머니와 든든한 후원자 친절한 은하 氏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겨우, 詩作이다.

 

 

[시 심사평]


김산님의 「월담의 공식」…,

골목의 언어, 거칠고 생생한 호흡을 만날 수 있어…



장  철  문

시인 / 문장 웹진 편집위원



김산님의 「월담의 공식」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지금 봉자 누나가 있는 골목으로 가면 들을 수 있는 언어를 만났다. 아직 서툴지만, 거칠고 생생한 호흡을! 봉자 누나의 울음은 급소를 빗물린 사냥감처럼 포획되었다. 살아 있는, 거칠고 생생한 호흡을 간직한 채로 단박에 숨을 끊어놓는 급소를 물 수 있기 바란다. 급소를 물린 사냥감은 상처가 없다. 시인은 야생 그대로, 정확한 급소를 물고서 소리 소문 없이 사냥감을 포획하는 것을 지향한다. 아직 설 문 이빨자국들이 남아 있다.

goddens님의 「봄날은 간다」에는 「월담의 공식」과는 다른 단아함과 아기자기함이 있다. 그러나 생생하지 않으며, 이빨자국을 남길지언정 사냥감을 거칠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없다. 슬쩍 다치지 않을 만큼만 물어서는 안 된다. 사냥감에게는 목숨이 걸린 문제다. 그렇게 쉽게 급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노련한 사냥꾼은 이미 여러 개의 흉터들을 갖고 있다. 구릉을 뛰어오르거나 벼랑을 뛰어내리는 동작에서 급소를 물어야 한다. 건강한 사냥감은 정지동작으로 자신을 허락하는 일이 없다. 어떻게 뛰는 ‘동!작!’ 그대로 급소를 물어 포획할 것인가, 사냥감을 주시하는 노련한 눈빛 속에는 그 순간을 포착하려는 집요함이 있어야 한다.


(심사 경위)

2005년 6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선정된 월간 우수작(총 32편) 가운데 우선 4편의 후보작이 추천되었다. 「봄날은 간다」(goddns), 「佛法주차」(자명한산책), 「월담의 공식」(김산), 「의기소침한 고등학생에게」(양승범). 이 가운데 심사위원이 특히 주목한 작품은 위의 두 편이었으며, 최종적으로 「월담의 공식」(김산)이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