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노을이 흐르는 강 / 조은길

자크라캉 2007. 2. 22. 18:57

 

               사진<다음 파이 - by 토러스>님의 작품 중에서

 

 

을이 흐르는 강 / 조은길


여기서부터는 서쪽이다
저 많은 강물이
강물 위에 번져 있는 저 많은 빛들이
빛을 바라는 저 많은 창들이  
여기서부터는 모조리 서쪽으로 길을 바꾸는
기적이 일어난다 장난 같다
서녘 하늘 구름들이 가지가지 모양으로 엉켜 있다
그 중에서 목화송이를 뭉쳐놓은 것 같은
희고 동글동글한 구름이 제일 좋다
한없이 포근한 한없이 부드러운
내 어머니 젖가슴 같은 형상
나는 아무래도 저것이 제일 좋다
서녘을 맴돌던 해가 갑자기 붉은 이빨을 치켜들고
어머니 젖가슴을 물어뜯고 있다 어머니의  
애타던
눈물겹던
달콤하던
생의 페이지들이
삽시간에 핏빛으로 물들어버렸다  
나는 수술실 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는데
응애응애 옛날처럼 기다리는데
어머니는 이제 맨 처음 생을 받을 때처럼  
조그맣게 강보에 싸여 울고 계신다

              -서정시학2007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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