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처녀가 보인다 / 노춘기

자크라캉 2007. 2. 22. 19:28

                         사진<떴다 노원 홍반장>님의 카페에서

 

녀가 보인다 / 노춘기

 

그녀는 늙고 있다

빙하처럼 바람이

얼굴 여기 저기에 길을 냈다

혈색은 그날의 달빛만큼 희다

그녀는 그곳에서 빈집을 이루었다

처마 끝에서 마른 빗물이 듣는다

빗물이 떨어진 자리에 다시 어둠이

그리고 방문을 두드리며 가끔

거친 바람이 들이쳤다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으로

그녀는 그곳에 처녀처럼 있다

그리고 그늘에서 서늘한 눈빛이 빛날 때

가장 환하게 웃을 때

처마 밑이 빈그릇처럼 불안하다

빈집의 바람 소리 아래

오래된 사금파리들이 길을 낸다

그 길을 따라 다시 그곳으로

그녀는 처녀가 되어간다

낯선 바람의 주름진 손, 그 속의 굽은 길

곧이다, 저 앞에, 지붕 위의 바람 그 너머에

처녀가 보인다



              -2007 현대시학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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