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기다렸습니다. 내 기다림은 내 몫이 아니고 나를 기다리는 곳에 있기에 지루하지 않습니다.
당성 소감은 내 기쁜 흥분이 차지하고 나는 그 흥분을 승화시키는 자리에서 비껴 새로운 기다림의 산을 탑니다.
산골에서 자란 탓에 사춘기 성욕이 일때면 뒷산으로 뛰어 오르다 숨차면 두러누어 하늘을 봅니다. 소나무 송충이 갈 잎 곤충들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 구름 이런 것들이 서로 너무 친하고 정다워 보여 "야! 너희들 정말 부럽다." 하는 정서에 내 성욕은 스스로 승화되는 겁니다.
그후 저는 명산이건 야산이건 몇번 간 산이건 산에 들기 전 인사를 산에 합니다.
산이 제일 싫어함은 "사람새끼"라는 소리를 들은 후 더 산에 정다운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그 때마다 새로운 산의 속살을 내게만 보여 줍니다.
수박 밭을 아무리 많이 봐도 수박한 조각 맞보는 것만 못하다는 표현이라 할까.
산에 인사는 산에 들어가는 방문객 예의 이지요. 그 후 산을 관광 눈으로 보는 산과 산 속에서의 산은 다름을 체험 합니다.
저는 이런 산에서 기다림을 보았습니다.어제가 오늘이 아니고 오늘은 내일이 아닌 것을 성경에서 말하는 "새로운 하늘땅"은 어제와 전연 다른 새 생명인 오늘 것을 알려 준 산.
산 물을 기다리는 바다가 있고 바다가 기다리는 산이 있음을 본 후 내 기다림은 지칠 수 없고 우주가 산을 타는 동작을 밤마다 봅니다. 이산이 기다림의 장소입니다.
내 기다림은 당선이 아니고 글자에 산을 담아 일는 여생입니다.
내 기다림은 우주보다 귀한 생명의 자유에 실어본 작품입니다.
진정으로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제가 믿는 하나님의 복을 빕니다.
무망 중에 소감 인사로 감사합니다. 건강 하세요.
김창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