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

정오 / 조말선

자크라캉 2006. 10. 17. 12:27

 

              사진<고운사랑>님의 플래닛에서

 

 

 

/ 조말선

오븐의 채널이 정각에서 멎는다
늦은 아침이 다 구워졌다
꽃나무 밑에서 놀던 적막은 바싹 익었다
밀가루에 버무려진 세상이 거짓말같이 부풀어오르는 시각
우체부가
벌겋게 달아오른 우체통을 열고
뜨거운 편지를 꺼낸다
삼십 분전에 넣은 편지가 벌써 익다니!
생의 한나절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또 숙성되었다





경남 김해 출생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및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1년 <현대시 동인상> 수상


=====================================
[감상]
뜨거운 정오를 지나자마자
나는 바짝 구워졌다
이제 그대의 손이 닿는 순간
한 없이 깊게 달아오를 것이다
뜨거운 울음을 내 뱉을 것이다.
편지의 절반도 읽기 전에
벌써 노릇노릇 구워지다니
생의 한 나절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또 얼마나 빨리 숙성된 것인가
참으로 부질없다. [양현근]

'참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 이동호  (0) 2006.10.22
남겨진 가을 / 이재무  (0) 2006.10.19
오는 저녁은 / 이문숙  (0) 2006.10.17
경전을 독해하다 / 차주일  (0) 2006.10.17
재봉질하는 봄 / 구봉완  (0) 200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