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랭보

빅톨 위고와 보들레르의 후계자 랭보와 그의 신화(Ⅳ)/조은섭

자크라캉 2006. 8. 23. 16:21

톨 위고와 보들레르의 후계자 랭보와 그의 신화

조은섭


IV.랭보 작품의 독특성과 神話의 몰락


브뤽셀, 로테르담, 지브랄타, 나폴리, 아덴(아라비아 남단), 키프러스, 이집트, 그리고 하라에서 바르디란 무역 회사에서 근무한 면서 하라와 아덴을 자주 왕래하던 랭보, 1885년부터는 본격적인 무기 밀매 상으로 변신 퇴폐와 방탕으로 물질 세계에 흠뻑 젖어 들어가게 된다. 그러던 1891년 아덴까지 들것으로 실려 온 랭보는 오래 전부터 앓아 오던 매독 증세가 오른쪽 무릎에 종양 암으로 나타나면서 죽음에 적신호를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의 가족에게: "난 뼈만 남았답니다: 날 보면 놀라게 될 것이다 " 라고 3월 15일 편지를 쓴다. 5월 9일 배를 타고 아덴을 떠나 13일 만인 22일 마르세이유에 도착, 25일 오른쪽 다리 절단 수술을 받게 되고 절망과 슬픔에 잠긴 랭보는 절규를 하게 된다:" 우리 인생은 불행이다, 끝없는 불행의 연속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존재 하는 것일까 ?" 라고 6월 23일 피력한다. 그가 죽기 전까지 병원과 샤를르빌을 왕래하던 탕아, 신동, 저항 시인 혹은 방랑아라 불리던 시인 랭보는 11월 10일 원점으로 돌아와 카톨릭의 성체배령과 함께 37세란 극히 짧은 나이에 그의 신화를 뒤로한 채 숨을 거두었다고 독실한 신자이며 가끔은 거짓말을 잘하던 그의 여동생 이자벨은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 성채배령을 받았다는 이자벨의 주장이나 파리 이슬람 사원의 교구장, 체이크 시 함자 부바쾨르의 주장처럼 랭보는 임종 당시 회교도로 개종했다는 억측이나 혹은 루이 아라공이 주장한 랭보의 공산주의는 모두가 랭보의 단면만을 스케치해 논 오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죽기 전 성채배령을 받을 수 없었다:" 많은 욕설을 퍼부었고 ", 그뿐만 아니라 " 간호원이나 그의 여동생들에게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욕설을 했다 "...

주장이 어쨌든 그의 작품과 그가 이끈 그의 삶은 모든 종교에 대해 혐오감뿐만 아니라 반발 감의 시위였다; 1865년 그의 첫 성채배령 이후 카톨릭을 경멸했고 베를렌느는 그의 " 저주스런 언어들 때문에...," 몇몇 시를 그의 시집에서 제거하기도 했다. 랭보에게 있어 크리스트는" 영원한 에너지 도둑 "에 불과 했고 그의 회교도 개종설은아프리카 남단에서 장사할 때사용하던 가명 아브도 랭보(Abdoh Rinbo), 즉 이슬람교에서 神을 섬기는 사람 아브달라( Abdallah )의 추종자란 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예수도, 알라도 마르크스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든 신화의 벽을 부수고 " 브알라 ! 쎄 르 시에클 당페르 ! "( 자 ! 지옥의 世紀여 ! ) 라고 외친 그에게서 어떤 신앙심을 찾는다는 것보다는 랭보가 끊없이 돌 출구를 찾기 위해 신비 세계를 추종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그의 비참한 죽음은 예견된 그의 탕아적 기질에서 비롯되었다고 베를렌느의 친구였던 에드몽 르펠르티에는 그의 삶을 이렇게 회상했다:

" 랭보의 인생은 그의 리듬과 같이 격동적이었고, 기분 나쁜 날의 그의 생각처럼 부조리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현대인의 형상이었다. 난 그런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을 뿐만 아니라, 식탁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도 몰랐다. 그는 오랜 시간을 경멸스런 침묵으로 지내다가, 역설과 욕설을 퍼부어 댔다. 유모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이었다. 소심한 사람들은 그의 면전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시골 마을의 어린 섹스 피어 보다는 트로프만(註:그 당시에 악명 높던 범죄수.)을 상기했다. 우리들은 그에 대한 점성술 결과를 바탕으로 그가 이 십 년 전에 사형 대의 이슬로 사라지진 않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그의 머리가 치욕의 바구니 속에 후광으로 장식된 영광과 함께 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 1891년 11월 17일자 { 레코 드 파리 } 에 기고한 에드몽 르펠르티에의 기사 내용 )

그러면 치욕과 영화의 후광을 앉고 삶을 등진 랭보, 격동적 리듬과 부조리한 사고를 아무데서나 토해 내던 랭보,죽기 전 적어도 15년 전에 이미 붓을 팽개친 랭보, 그의 작품의 독특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의 본격적인 연구는 그의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프랑스 대학이나 혹은 다른 나라 대학에서 대두된다. 그럼 현재 랭보 문학의 신화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가들은 그의 신화를 그의 애매 모호한 단어 선택에서 찾고 있다. 이에 대해 앙드레 귀이오는 그의 저서 { 일루미나시옹의 분석}에서 랭보 작품의 분석을 어렵다는 것을 "독서 중에 뭔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본문을 이해시키는 방법이며, 독서의 기쁨은 이런 결핍으로 인한 근심으로 이루어진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가장 원초적인 랭보의 작품의 신화는 문장과 문장 사이뿐만이 아니라 그 문장 하나 하나에 숨쉬고 있는 문체의 異質性에서 랭보 세계의 첫 번째 독특성을 찾을 수 있다; 문체의 이질성은 19c 전체 시스템에 대응하는 자체적인 두터운 벽을 쌓아 랭보 자신의 보호 벽을 이룩하고 있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보들레르에서 클로델로로 이어지는 신비주의와 상징적 문학관이 꼭 랭보와 말라르메가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의 상징성은G.미쇼가 주장한: " 우리 시대까지 전달된 옛적의 모든 철학과 모든 종교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학설을 되찾는 것이다" 란 상징주의 개념(註:G. 미쇼: 상징주의 시적 메시지, 1948, 파리, P.9, NIZET.)에 하나도 모자랄 것이 없는 작품이 곧 랭보의 {지옥의 한철}과 { 일루미나시옹} 일 것이다.

두 번째로 그의 독특성은 그의 도덕관에 있다고 보아야 합당할 것이다;- 그의 {견자 혹은 선지자의 편지} 로 불리는 작품에서 그의 영혼을 악마의 영혼으로 서슴없이 지칭함은 물론, 그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어떠한 도덕이나 윤리에 저해됨이 없이 과감하게 표현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이 점에 대해 말하기를: " 난 문자 그대로 그리고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모든 뜻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고 싶었다고" {랭보에게 보내는 말 }이란 자신의 글에서 밝혔다. 이것은 랭보의 이기심이 가득한 도덕성보다도, 그의 오만 성에서 비롯한 현실 부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오만이 잃어버린 자비보다 낫다" 라고 그의 시 {천재}에서 밝힌 랭보, 그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한 1871년에서의 1874년까지 약 3년간 지닌 그의 지고한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도덕관념은 그의 야망을 채우기엔 거추장스런 사물에 불과 하다는 것을 그의 선생 이장바르에게 보낸 서신에서 17세때 " 모든 감각의 타락을 통해서 절대자에게 도달하겠다" 라고 이미 선포했던 랭보;- 탕아 적이고 반항적인 천재의 기질, 예술인이 가진 {끼}를 누구보다도 밀도 있게 갖춘 시인이란 점을 감안 한 단면 그가 지닌 천재적 오만은 보이는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통념적인 오만이 아니라, 자신의 靈界에서 도덕과는 무관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인으로서 오만일 것이다.

마지막으론 그의 뮤티즘(함구무언)에 있다; 17세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 지은 랭보. 一寸光陰속에 모든 것을 쏟아 버리고 침묵으로 답한 그의 행동은 그의 신화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그의 시 [ 출발] 에서 밝힌 것처럼알만큼 알고, 읽을 만큼 읽고, 볼만큼 보았단 말인가랭보의 침묵은 말라르메가 그의 시 {바다의 미풍}에서 모든 책을 다 읽었다고 과시하는 오만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고독자에게 시의 근본인 환상과 의문의 章을 열어신비감과 경건함마저도 느끼게 한다.

37년의 삶을 악동, 천재 시인, 선지자, 탕아 그리고 무기 밀매 자로서 수많은 상징을 낳은 랭보;- 그의 시 { 모음}에서 "A" 를 검정, "E" 를 흰색, "I" 를 적색,"U" 를 녹색, "O"를 청색으로 그의 우주를 색감으로 표출,- 空卽是色, 色卽是空이란 불교의 因緣和合說과 공감대를 느끼게 하는 동양적인 면을 많이 함유한 그의 상징 세계 속에서 {난 타인이다 } 라고 외친 랭보, 거센 방랑벽, 베를렌느와의 사랑과 갈등, 알코올과 마약에 몰입, 감옥 그리고 그의 삶을 앗아간 매독; 이 모든 것이 色으로 표현될 수 있는 랭보 자아 속에 내포된 타인의 얼굴인지도 모른다.그래서 임종을 앞두고 다시 아덴으로 돌아가 고파 그리도 그리던 바다, 태양은 그 몸속에 남은 마지막 불꽃의 상징이자 다시 찾은불멸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다시 찾았다.

무얼 ?- 불멸.

그것은 태양과 함께 떠나 버린 바다다.

...........................................

수호 魂이여,

보잘것없는 밤,

그리고 불 바다를 이룬 대낮의,

고백 아래 사라집시다."

( 시 [불멸] 中에서 )

태양과 함께 떠나 버린 바다는 그의 혼조차 빼앗아 가 버렸지만, 그것은 태초의 無의 상태; 어둠과 빛의 혼잡 상태로 다시 돌입하는 관문이며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소문과 애정]의 세계로 새롭게 새 출발하는 랭보만이 알 수 있는 불멸의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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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리뷰 199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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