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녀의 둥근 방 / 윤석정
둥근 방엔 뿌리의 기억으로 술렁댄다
그녀의 어금니를 악문다
뿌리에서
헐거운 유년이 자맥질하며 올라와
혼자 놀기 좋은 골목에 닿는다
이윽고 노란 꽃술이 뜨겁다
봄눈 속에서 눈꽃이
뿌리를 내렸던가
생의 진통은 냉기처럼 뿌리로 옮겨오는데
견딤이란 활시위를 당겨 과녁을 향해 오래 겨냥하는 것
그리하여 힘 줄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전봇대와 고무줄 놀이를 하던 아이가 떠난 골목
푸른 등줄기로 당긴 햇살이 탯줄처럼 팽팽하다
그녀는
급하던 호흡을 가다듬고
에누리없는 기억을 시위에 맞춰 끼운다
봄눈이 녹아 뿌리 없는 돌에 핀 이끼 마냥 두드러기가
그녀의
진통을 복돋는다
춘분이 지나고 태기가 오더니
매일 한치씩 부피를 키운 활시위
외롭던 유년에서부터 노후까지의 궤적을
겨냥한다
골목 어귀에 기억의 양수가 흥건하게 터지자
그녀의 어금니가 저려 온다
둥근 방엔 옹골진 태아가
수런거린다
..........................................
▶
200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심사평 : 이용숙(시인ㆍ전주교대
총장)
패기ㆍ언어적 표현 돋보여
월드컵의 붉은 흥분이 지나고 대통령 선거의 노란 물결이 지난 12월의 끝자락에서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의 심사가 있었다. 올 한해의 노작을 점검하는 자리인 만큼 작품을 대하는 자세부터 신중함을 보여야 했다. 우리 지역은
물론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 각지와 함께 해외동포의 작품까지 모두 ○○편의 응모작을 대하면서, 하나같이 진실하고 순수한 시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시의 새로운 희망이 보여 기뻤다.
몇 번의 숙고 끝에 조세라씨의 `달'과 최일걸씨의 `재개발의 봄', 김성철씨의
`물풀들의 수런거림', 윤석정씨의 `그녀의 둥근방'등 이상 네 편의 작품들이 언급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조세라씨의 `달'은 "달은 거대한
무덤이 되어 건물 옥상/이곳 저곳을 옮겨다녔다"는 표현들이 돋보엿으나 다른 작품들에서는 이런 성과가 아쉬웠다. 최일걸씨의 작품은 잘된 시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텍스트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작품들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 `불굴의 몸을 던져 절망의 심연 속으로 자맥질한다'라든가
`경멸 가득한 눈망울'등 절제되지 않은 주관과 감정이 못미더웠다. 김성철씨의 작품은 하나의 견고한 건축물을 보는 듯하다. 치밀한 구성과 잘
조정된 긴장감은 오랜 습작의 흔적을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의도된 호흡조절은 오히려 읽는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윤석정씨의 `그녀의 둥근방'을 당선작으로 뽑느다. 씨에게는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진정한 패기가 있다. 시인의 인생관과 언어적
표현 사이가 구체적인 것도 강점으로 부각되었으며,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어눌한 말투를 믿음직스럽게 한다. 완성도에서는 아직도 미흡하지만
시인의 장점을 잘 나타내는 `멸치'에도 애정이 간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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