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 릴케

두이노의 비가 <제7비가> / R.M릴케

자크라캉 2006. 3. 29. 11:00

두이노의 비가

 

 

 

R.M.릴케

 

 

 

제 7 비가

 

더 이상 구애하지 마라, 저절로 터져나온 목소리여, 네 외침이
구애의 외침이 되지 않게 하라 ; 너 비록 새처럼 순수하게 외칠지 모르지만,
계절이, 상승하는 계절이 새를 들어올릴 때면, 이것은 거의 잊고 하는 일,
새 역시 한 마리 근심하는 짐승에 지나지 않으며, 맑은 행복을 향해,
친근한 하늘을 향해 계절이 던져 올리는 유일한 마음이 아님을.
새처럼 바로 그렇게 너도
구애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아직은 보이지 않는, 조용한 여자친구에게
구애를 하여, 네 목소리를 듣고서 그녀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대답이 서서히 눈을 뜨고 몸이 뜨거워지게 하고 싶은 것이다,
너의 대담한 감정에 어울리는 불타오르는 감정의 짝이 되도록.

오, 봄은 이해하리라 ㅡ, 어느 조그만 틈새 하나라도
예고의 음조를 울리지 않는 곳이 없으니. 제일 먼저,
높아져가는 고요와 말없는 순수한 긍정의 날로 둘러싸여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저 첫 작은, 묻는 듯한 피리 소리를,
그 다음엔 계단들을, 꿈속에서 본 미래의 사원을 향한
외침의 계간들을, 그 다음엔 종달새의 지저귐을,
약속된 놀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치솟는 물줄기로 잡아 올리는
분수들을 이해하리라.... 그러면 봄 앞엔 여름이 서 있으리라.

그 모든 여름 아침들뿐만 아니라, 이 아침들이
낮으로 바뀌어가며 해돋이로 빛을 뿌리는 모습뿐만 아니라,
꽃들 사이에선 점잖지만, 위쪽, 나무들 모습 사이에선
힘차고 거대한 날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펼쳐진 힘들의 경건함뿐만 아니라,
길들뿐만 아니라, 저녁 무렵의 초원뿐만 아니라,
늦은 뇌우가 지나간 뒤에 느끼는 예감뿐만 아니라,
그 밤들! 드높은, 여름날의 밤들,
그리고 별들, 대지의 별들.
오 언젠가는 죽는 것, 그들의 무한함을 아는 것,
그 모든 별들을 : 그들을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잊겠는가!

보라, 그때 나는 애인을 향해 외쳤다. 그러나 그녀만이
오는 것이 아니니라.... 무른 무덤들을 헤치고 나와
소녀들도 내 곁에 서리라.... 내 어찌 한번의 외침을
제한할 수 있겠는다, 어떻게? 땅에 묻힌 소녀들은
언제나 이 세상을 찾고 있다. ㅡ 너희 어린아이들아, 이곳에서
제대로 한 번 손에 잡은 것은 많은 이들에게도 소용되리라.
운명이 어린 시절의 밀도보다 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
얼마나 자주 너희들은 사랑받는 남자를 추월했던가, 무를 향한 열린 세계를 향한 그 놀라운 달리기 끝에 숨을 내쉬며, 내쉬먀.

이승에 있다는 것은 멋진 일. 너희들은 그것을 알았다, 소녀들이여,
너희들도. 너희들은 그것을 빼앗긴 것 같다, 너희들은 도회지의
가장 비참한 골목과 곪아터진 상처 속으로, 또는 쓰레기
구덩이 속으로 빠졌다. 모두 한 시간만을 가졌으니, 아니,
온전히 한 시간도 아닌, 시간의 척도로 거의 잴 수 없는
두 순간 사이의 시간을 ㅡ, 모두 이 세상에 존재했을 때.
모두 모든 것을 가졌을 때. 현존재로 가득 찬 혈관들을.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다정한 이웃이 인정해주거나
시기하지 않는 것은 너무 쉽게 잊는다는 것. 우리는 남에게
행복을 눈에 띄게 보여주려 한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복은
우리가 그것을 마음속에서 변용시켰을 때 그러나는 법인데.

세계는, 사랑하는 이여, 우리의 마음속 말고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인생은 변용 속에 흘러간다. 그리고 외부 세계는 점점 더
적게 사라진다. 한때 옹골찬 집이 서 있던 곳에
가공의 이미지가 끼여든다, 비스듬히, 상상의 세계에
완전히 예속되어, 그 모든 게 아직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듯.
시대정신은 힘의 거대한 창고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모든 것에서 취해온 긴장된 충동처럼 형체도 없다.
시대정신은 사원을 더 이상 모른다. 우리는 이 같은 마음의
낭비를 은밀하게 아끼려 한다. 그렇다, 아직 하나의 사물이,
지난날 숭배하던 것, 무릎 꿇고 모시던 것이 아직 남아 있어도,
그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벌써 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것을 마음속에
다시 지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 기둥과 조각상으로 더 위대하게!

이 세상이 묵직하게 방향을 틀 때마다 폐적자들이 생기는 법,
이들은 과거의 것도 그리고 미래의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미래의 것 역시 사람들에겐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 이것은 아직은 우리가 인식하는 형상을
보존하는 것을 강화시켜주리라. 이것은 한때 사람들 속에 있었고,
운명 속에, 파괴적인 운명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름 속에 서 있었다,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것은 확정된 하늘에서 별들을 제 쪽으로 휘어놓았다.
천사여, 나는 그것을 그대에게 보여준다, 자 여기! 그대의 눈길 속에
그것이 구원을 받게 해다오, 마침내 똑바로 서도록.
기둥들, 탑문들, 스핑크스, 사라져가는 또는 낯선
도시 위로 우뚝 솟아 버티는 대성당의 잿빛 지주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던가? 오 천사여, 경탄하라, 바로 우리다,
우리다, 오 그대 위대한 존재여, 우리가 그 일을 해냈다고 말해다오,
나의 호흡은 그렇게 찬미하기에도 벅차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공간들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풍요로운 몫을,
이들 우리의 공간들을. (우리들의 느낌의 수천 년으로도 이들이
넘쳐나지 않았으니, 이들은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광대한 것일까.)
그러나 탑은 거대했다, 그렇지 않은가? 오 천사여, 탑은 거대했다,
그대 옆에 놓아도 거대했다. 샤르트르 성당은 거대했다, 그리고
음악은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 우리를 넘어섰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여인도, 오, 밤의 창가에서 혼자서....
그녀도 그대의 무릎까지 다다르지 않았던가?
내가 실제 그대에게 구애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천사여, 내가 구애를 한다고 해도! 그대는 오지 않는다.
나의 부름은
언제나 사라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강렬한
흐름을 거슬러서는 그대는 올 수 없다. 나의 외침은
쭉 뻗은 팔과 같다. 그리고 무언가 잡으려고
하늘을 향해 내민 나의 빈손은 그대 앞에
공허하다. 방어하고 경고하는,
잡을 수 없는 그대, 까마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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