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비령
유금숙
1.
먼 곳으로부터 온 바람들이
눈덮인 골짜기 마다 모여 앉아
지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맨살을 드러낸 채 자작나무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2.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에 산꿩 몇 마리
수직으로 상승하며 눈을 털어 낸다
겨울잠에 들었던 산들이 화들짝 깨어나
놀란 메아리를 받아 안는데
새떼들이 다녀간 하늘에
파랗게 언 발발자국 찍혔다
3.
구름다리 건너 약수터에서
깨진 얼굴 하나 건져 올렸다
가물가물한 기억의 갈피 상이로
숨은 그림찾기가 시작되고
이제 무언가 마악 생각나려는 순간
불현 듯 산 그림 뒤로 겨울해 사라져 버려
기억 속 그림 산산이
금이 가며 부서지는 저녁
언덕 위 '달빛 별장'이 창문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언어들이
꽃등으로 붉게 피고 있다
유금숙의<꿈, 그 간이역에서>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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