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인작품

겨울은비령/유금숙

자크라캉 2006. 2. 27. 15:16
겨울은비령/유금숙 | 좋은 시
2006.02.27

겨울은비령

   

                        유금숙

 

1.

먼 곳으로부터 온 바람들이

눈덮인 골짜기 마다 모여 앉아

지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맨살을 드러낸 채 자작나무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2.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에 산꿩 몇 마리

수직으로 상승하며 눈을 털어 낸다

겨울잠에 들었던 산들이 화들짝 깨어나

놀란 메아리를 받아 안는데

새떼들이 다녀간 하늘에

파랗게 언 발발자국 찍혔다

 

3.

구름다리 건너 약수터에서

깨진 얼굴 하나 건져 올렸다

가물가물한 기억의 갈피 상이로

숨은 그림찾기가 시작되고

이제 무언가 마악 생각나려는 순간

불현 듯 산 그림 뒤로 겨울해 사라져 버려

기억 속 그림 산산이

금이 가며 부서지는 저녁

언덕 위 '달빛 별장'이 창문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언어들이

꽃등으로 붉게 피고 있다

 

유금숙의<꿈, 그 간이역에서>시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