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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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물고기 |
[당선소감]
검둥오리사촌이라는 바닷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참으로 별난 이름을 다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별난 이름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이름을 모처럼 갖고 있는 동물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오랫동안 시를 습작하면서 깊은 좌절을 겪었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어찌 어찌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붙들고 안 놔주는 집착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자학할 때도 있었다.
검둥오리도 아니고, 검둥오리가 아닌 것도 아닌 불편한 이름 하나 알처럼 품고서 수년간의 습관적 투고 여정을 거쳐왔다. 어느 중견 시인이 문예지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몇 년간의 신춘문예 투고에서 한 번도 최종심에 올라가 본 일이 없어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덜컥 당선이라는 통지를 받았다는.
그런 일도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지금 당해보니 막막함을 넘어선 먹먹함이 엄습해 온다. 아, 지금까지는 이랬는데, 앞으로는 과연 얼마나 더 해야 이 큰 상의 이름값을 하는 걸까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먹먹함을 오랜 세월동안 막막하게 견뎌온 힘으로 헤쳐 나가려 한다.
부족한 저를 꼭 마지막 날에 구원하듯 손 내밀어 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가르침을 주신 이승훈,이화은 선생님 고맙습니다. 시로 인하여 고민할 때마다 늘 옆에 있어 주신 이대의,차주일,문정영 시인님들 또한 고맙습니다.
시에 대한 갈급과 애증(愛憎)이 생길 때마다 기꺼이 제게 시간을 할애해 주던 시맥,풀밭,아도 그리고 시산맥 님들 또한 제 시의 밑천임을 감히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어머니,아내 숙,규민·태인과 친지들에게 오래 묵혔던 말을 꺼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심사평]
예년보다 우수한 작품이 많아 반가웠다. 예심을 거쳐 넘어온 44명의 작품 중 검토해서 남은 작품이 강은새의 ‘우주물고기’, 장진명의 ‘흑두루미 주점’, 조혜정의 ‘말을 굽다’, 장인자의 ‘발’, 박태순의 ‘쓸쓸한 퇴화’, 석지명의 ‘일인용 매트리스’, 이순화의 ‘풀꾹새’, 박소원의 ‘흰 종소리가 울린다’, 류진아의 ‘사내의 나라, 유토피아’, 임재정의 ‘기차는 미루나무 이파리를 자나네’, 백상웅의 ‘무림 책방’, 박지성의 ‘실연의 꽃이 피었습니다’, 김영숙의 ‘비평가 식당’, 황인숙의 ‘호랑나비 겨울’, 정미경의 ‘개를 위한 랩소디’, 강은미의 ‘아름다운 추락’, 이근창의 ‘구덩이’, 안정혜의 ‘외줄에 묶인 사나이’, 박혜점의 ‘선창포구’, 전향국의 ‘대설주의보’ 등이었다.
여기서 다시 논의해서 남은 작품이 ‘우주물고기’, ‘흑두루미 주점’, ‘말을 굽다’, ‘일인용 매트리스’, ‘발’, ‘호랑나비 겨울’이었다. ‘발’은 짜임새도 있고 무게가 있는 작품이었으나 같이 투고한 작품 ‘엇각’이 작년 수준에서 별로 진전이 없어 보여 제외시켰고 ‘호랑나비 겨울’도 같이 투고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뒷받침되지 못해 제외시켰다.
‘말을 굽다’는 능란한 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나 ‘말’로 비롯되는 이미지 전개가 화덕으로 집약되는 상징성이 약해 보여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고, ‘일인용 매트리스’는 현실성 있는 진한 이미지가 시선을 끌었으나 좀더 폭 넓은 상상력으로 구체화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우주물고기’와 ‘흑두루미 주점’은 어느쪽 모두 버릴수 없는 작품이었다. 특히 장진명씨가 함께 투고한 작품 ‘육교’도 ‘흑두루미 주점’과 함께 수준을 이룬 작품이었으나 나머지 작품들이 고르지 못해 어쩔수 없이 투고한 다섯편의 작품이 모두 수준급인 ‘우주물고기’를 당선작으로 했다
‘우주물고기’는 우주적 소재를 시적 환타지로 이끌어가는 수사법이 새로운 맛을 준다는 의미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 작품 자체만으로는 밀도가 여린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의 ‘우포늪 통신’이나 ‘너도밤나무, 그대’같은 탄탄한 작품이 뒷받침 해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하는데 의견이 없었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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