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스크랩] [정용화] 금이 간 거울 - 200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자크라캉 2006. 2. 22. 10:35

 

200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금이 간 거울

 

                 정용화

 

얼어있던 호수에 금이 갔다
그 틈새로 햇빛이 기웃거리자
은비늘 하나가 반짝 빛났다
그동안 얼음 속에서
은어 한 마리 살고 있었나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지느러미
출구를 찾아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 속을 헤엄친다.
넓게 퍼져 가는 물무늬
한순간 세상이 출렁거린다

깊고 넓은 어둠 속에서
너를 지켜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

금이 간다는 것은
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다
깊이 잠들어 있는 호수 속에서
물살을 헤치고 길이 꿈틀거린다



 
“완성도ㆍ날카로움 돋보여”
심사평
   
수천편의 응모작 가운데 함민복 이정록 시인의 엄격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우이정의 ‘빈컵’외 정재영의 ‘밤톨, 다이아몬드’외 등 17분의 시 70여편이었다. 다시 심사위원 두 사람이 나누어 읽고 추려낸 것은 김영식의 ‘떠들썩한 식사’외, 김명희의 ‘노트북’외, 이지혜의 ‘곰달래길 사람들’외, 정재영의 ‘손이 쥔 손’외, 그리고 정용화의 ‘금이 간 거울’외 등이었다.
이 작품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곰달래길 사람들’, ‘손이 쥔 손’, ‘금이 간 거울’등 3편이었다.
‘곰달래길 사람들’은 안정된 시 정신과 표현이 너무나 모범적인 것이어서 좋은 작품으로 판단되었으나 바로 그점이 동시에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손이 쥔 손’은 너무 작품성이 농익어 그만 터져버릴 것 같은 원숙함이 장점이었으나 동시에 그것이 신인다운 패기나 신선도에 있어 아쉬움으로 작용하였다. 오랜 고심과 논의 끝에 ‘금이 간 거울’을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당선작은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시적 사유의 깊이 또한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예리하고 신선한 감각이 신인으로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반짝이는 모든 것은/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금이 간다는 것은/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다’라는 구절등에서 볼 수 있듯이 틈의 틈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어둠 속에서 빛이, 무에서 존재가 생성되고 존재가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존재론적 사유를 보여주는 것도 장점과 가능성으로 부각되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면 좋은 시인으로 성장해갈 것을 믿고 우리는 이 작품과 시인을 당선작으로 선정할 것을 합의할 수 있었다. 당선자의 각고 정진과 선외 예비 시인들의 새로운 분발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심사위원 김재홍 문정희

출처 : 시와 시인
글쓴이 : 이동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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