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몽환의 기우 - 심은섭

자크라캉 2021. 11. 9. 23:26

 

   몽환의 기우

 

 

   심은섭

 

 

 

   1.

   둥근 시간이 귀향을 꿈꾸며 방점을 찍어 놓은 표식이고, 갈증의 뒤편에서 죽음의 시점을 기억하는 접시꽃의 만개다 어쩌면 종부성사를 받은 환자의 마지막 알약이다 때론 망각의 강을 건너갈 비행접시다. 하지만 석공이 새기고 있는 비문의 주인공이다

 

   2.

   자물쇠로 입술을 굳게 잠근 독락당이며, 머리를 삭발한 목어가 즐겨먹던 물렁한 견과류다 아니다 계시의 일정을 잊어버린 신들의 은신처다 혹은, 궁핍의 얼굴이 피멍을 어루만지며 찾아간 암자다 그의 몸속에 푸른 사리가 자란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3.

   그 영토 안에는 비가 오는 겨울, 혹은 눈 내리는 봄의 공존이다 얼굴을 숨길 때마다 탈이 났다 그러므로 사립탐정이 새벽마다 찾아와 발문수를 재어 갔다 하지만 어떤 단서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세상은 더 두꺼운 탈을 쓰고 춤을 추었다

 

 

-출처 : 2021년 《평창문학》 문집 제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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