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심은섭
얼굴은 하얀 목련이지만 뒷모습은 사월 초파일이다 나와 함께 한 방향으로 총구를 겨누는 총잡이다 내가 마른 강물로 흐를 때면 기우제를 지내주는 제사장이고 대기권을 이탈하는 유성을 바라보며 서로 슬픔을 수혈하기도 했다
때로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78곡이였다가 내가 어둠의 깃발로 펄럭일 때 푸른 새벽으로 다가왔다 붉은 장미꽃이 지천으로 핀 5월, 초병의 눈초리로 나를 경계강화하지만 10월이 오면 어김없이 능금빛 미소를 건네는 황금불상이다
오랜 생의 전투로 사기가 저하된 패잔병인줄로 알았으나 탄알이 장전된 38구경 6연발 권총 한 자루였다 단단한 고독 몇 개가 실밥이 터진 나의 영혼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할 때마다 내 손을 잡고 함께 군가를 불러주는 전우였다
-2020년 『시와세계』 겨울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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