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https://blog.naver.com/giveluck114/220240498345>에서 캡처
양파의 복음
심은섭
한 겹의 성벽을 쌓아 올릴 땐 화경에 피었던 꽃이 저물어 가는 설움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성벽 위에 깃발을 꽂을 때 세상을 가지려는 음모로 인식했다 두견새소리 찾아오는 창문마저 봉쇄할 땐 금은보화를 은닉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그는 곧 가면을 쓴 한파가 온다는 기상예보에 촘촘히 성벽을 쌓았다 얼굴 없는 도시의 바람이 찾아온다는 기별에 성벽과 성벽을 잇는 계단을 부셔버렸다 밤마다 꽃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무녀의 은방울을 밤새도록 흔들었다
궁궐 까마귀가 칙서를 물고 오면 천수경 읽는 소리가 성 밖까지 들리도록 달빛보다 차갑게 외웠다 어미의 부음이 전달되었으나 연꽃 한 송이로 그 슬픔을 대신했다 그럴 때마다 흰 뿌리로 놓은 계단을 밟고 내려가 땅 속 어둠마저 안아주었다
*2017년 『시와세계』 겨울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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