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에곤 실레의 드로잉-심은섭 시인

자크라캉 2017. 11. 9. 23:35



                                   <사진 : http://tpdlddl.tistory.com/17>에서




곤 실레의 드로잉

 

 

심은섭

 

 

욕망을 켜놓고 따스한 공포를 키우던 한 사내가 화선지에 절규를 암각하고 있다 간혹 이마에 실금을 내고 진지한 영혼을 곤두세우려고 캔버스로 불안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그의 붓끝엔 욕망이 욕망하지 않는 시퍼런 정맥의 강이 흐른다

 

휑한 눈 속으로 도심의 야간열차가 내달린다 좌석마다 발가벗은 영혼들이 사타구니에 흙빛얼굴을 처박고, 일순간 절망과 타협 중이다 그래도 그는 등나무처럼 뒤틀린 두 팔의 만남을 위해 포승줄에 결박된 생의 에너지로 질긴 죽음을 톱질한다

 

그가 거울 속에서 입이 없는 비쩍 마른 자화상을 건져 내며, 화선지 밖에서, 혹은 안에서 빈혈의 나무를 태우려고 우울의 수염을 깎는다 그러면서 달콤한 불안을 폐부로 들이킬 뿐, 머리 위에 뜰 죽음 이후의 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2017, 현대시10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