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김지혜

자크라캉 2011. 1. 2. 21:00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 김지혜

 

들판의 지표면이 자라는 철


유목의 봄,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의 다른 말은 유목
들판을 옮겨 다니다 툭, 터진 꽃씨는
허공을 떠돌다 바람 잠잠한 곳에 천막을 친다
아주 가벼운 것들의 이름이 뭉쳐있는 어느 代
날아오르는 초록을 단단히 잡고 있는 한 채의 게르
꿈이 잠을 다독거린다.


떠도는 혈통들은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어느 종족의 소통 방식 같은 천막과 작은 구릉의 여우소리를 데려와 아이를 달래는 밤
끓는 수태차의 온기는 어느 후각을 대접하고 있다.


들판의 화로(火爐)다.
노란 한 철을 천천히 태워 흰 꽃대를 만들고 한 몸에서 몇 개의
계절을 섞을 수 있는 경지
지난 가을 날아간 불씨들이
들판 여기저기에서 살아나고 있다.


천막의 종족들은 가끔 빗줄기를 말려 국수를 말아 먹기도 한다.
바닥에 귀 기울이면 땅 속 깊숙이 모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초원의 목마름이란 자기 소리를 감추는 속성이 있어 깊은 말굽 소리를 받아 낸 자리마다 바람이 귀를 접고 쉰다.


이른 가을 천막을 걷어 어느 허공의 들판으로 날아갈 봄.

 

 

 

 [약력]

▷본명 김춘순

▷1952년 강원도 춘천 출생

▷수원여대 졸업

▷경기도 성남시 사회복지단체 기아대책 소속 중동제2복지회관 사회복지사

 

[당선소감]
짐승 배설물이 내뿜던 난로의 온기가 준 선물

당선통보를 받고 예전 벌판의 집에서 느꼈던 온기가 생겨났습니다.
 
딱딱하게 마른 짐승의 배설물이 내 뿜던 난로의 그 온기.
맨 처음 짐승의 뱃속에서 쏟아졌을 때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을 그런 배설이라면 지금 나의 이 지난한 배설도 그와 같은 級(급)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늦은 걸음입니다. 뒤처진 걸음입니다. 그래도 간혹, 뒤를 살피는 업이 천직이 될 수도 있다는 용기를 내어 봅니다. 척후병의 막중함으로 詩作(시작)에 임하겠습니다. 안도의 한 숨이 얼마나 방심하는 순간인지를 다시 한 번 되뇌이면서 잠시만 기뻐하겠습니다.

새벽운동시간까지 깨어있는 나를 보며 잠 채근을 해주던 무뚝뚝한 남편과 가족의 둘레에 앉은 승준, 은경, 동현, 수연, 동준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딸만 낳아 평생을 죄인처럼 사셨던 어머님의 기쁨도 남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시의 언저리부터 살펴주신 박해람 선생님, 목적지를 욕심내지 말고 잠시 쉴 수 있는 쉼을 욕심내라던 그 말씀 내내 새기겠습니다. 또 함께 구름밭을 경작하는 경운서당 문우들, 그대들이 내뿜는 내공 덕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서로를 보듬고 격려해주는 다울동인, 용인문학회 식구들, 첫걸음을 떼게 해 주신 이지엽 교수님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당선이라는 축제의 자리에 앉혀주신 정희성, 강영환, 허정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시작의 각오를 올립니다. 국제신문의 선택에도 또한 누가 되지 않는 행동을 다짐 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심시위원]

           정희성                   강영환           허정(문학평론가)

 

[심사평]
삶을 응시하는 깊이와 고단한 삶 밝게보는 능력 탁월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의 심사는 예심 없이 271명이 보낸 전체 응모작을 심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중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작품은 총 27편이었다. 논의에 논의를 거쳐 최종심까지 오른 작품은 '벗어놓은 외출' '둥근 강' '폐기물집하장 가는 길' '비밀의 화원'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등 5편이었다. 이 중에서 '비밀의 화원'과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를 놓고 심사위원들의 최종논의가 있었다.

'비밀의 화원'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룬 시로서 작가의 현실인식이 돋보이는 시였다. 이주노동자를 형상화하는 데에 있어서 그들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그들의 아픔에 다가가는 솜씨가 뛰어난 시였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가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삶을 자기 아픔으로 여기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화자가 관찰자의 태도로 물러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는 민들레의 씨앗이라는 미시적인 사물들에서 유목민들의 삶을 거시적으로 이끌어내는 발상이 참신한 시다. 민들레의 꽃말에서 유목을, 민들레 홀씨가 부푼 모양에서 유목민의 텐트인 게르를 연상하고, 이를 수태차, 말발굽 등으로 이어나가는 이미지가 자연스럽다. 이를 통해 유목민의 고단한 삶을 봄의 이미지를 살려 밝게 형상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편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역량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응모작의 전반적인 수준에 있어 김지혜가 고르다는 점을 높이 사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를 당선작으로 하기로 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본심 심사위원 정희성 강영환(이상 시인) 허정(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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