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2 09:14
|
경성 시내에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길게 울려 퍼지자 이상(李箱)은 걸음을 멈추고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는' 거리에서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그러나 이상은 날개를 퍼덕거리기도 전에 '몇 편의 소설과 몇 줄의 시를 써서 쇠망해가는 심신 위에 치욕을 배가'하고 추락했다.
1910년 조선왕조가 몰락하는 시점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의 파시즘 속에서 근대를 겪은 이상의 시에는 근대의 표상물인 백화점과 키치적 환상이 차고 넘쳤다. 그의 전위적 실험주의 문학에 내장된 도약의 동기는 '근대 넘어서기'였지만 이상 자신은 그 문턱에서 넘어졌다. 이상은 선조(先祖)와 문벌(門閥), 전통과 인습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破片)'의 운명을 제 몫으로 수락했다. 수학과 건축의 기호들, 말장난과 숫자들로 조합된 시들을 써서 근대를 희롱하던 천재 시인은 마침내 근대의 바다에서 난파당한 채 근대의 이단아로 떠돌다가 돌아갔다.
1936년 10월 이상이 폐결핵이 깊어진 몸으로 감행한 도쿄(東京)행도 근대의 첨단과 세계 정신의 중심지를 몸으로 겪어보고자 함이었다. 경성에는 더 이상 새로운 문학으로 비상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고 판단한 이상은 새로운 예술의 돌파구를 찾아 도쿄로 건너간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 긴자(銀座)의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화려한 거리와 신주쿠(新宿)의 소란함은 낡고 진부한 식민지 수도 경성과 다를 바 없이 서양을 흉내냈을 뿐인 '모조(模造)된 현대(現代)'였다.
이상은 깊이 절망했고 환멸을 느꼈다. 이상은 도쿄 체류의 많은 날을 간다(神田) 진보초(神保町) 3정목(丁目) 10―1―4 이시카와(石川)의 하숙집에 칩거하며 소설과 수필을 써 나갔다. 단편 〈동해(童骸)〉 〈종생기(終生記)〉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단발(斷髮)〉 등과 수필 〈19세기식〉 〈권태〉 〈슬픈 이야기〉 〈실낙원〉 〈최저낙원〉 등이 이 시기에 쓰였고, 대개는 유작(遺作)으로 발표됐다.
이상은 간간이 김소운(金素雲)이나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인 이시우·정현웅·조풍연 등과 어울렸다. 답답할 때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1937년 1월 21일부터 27일까지 히비야공원 공회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미샤 엘만(1891~1967)이 방일(訪日)연주회를 가졌을 때 이상은 끽다점 낙랑파라에서 레코드로 들었던 이 유대계 러시아인의 연주회를 들으러 갔다. 아내 변동림은 이상에게 어서 돌아오라고 엽서를 보냈고, 이상도 3월이 되면 경성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2월 어느 날 이 식민지 청년은 하숙집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일본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거동 수상자라는 명목으로 연행됐으며, 바로 사상 불온자라는 혐의로 도쿄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수감됐다. 경찰서에서 한 달여가량 조사받던 이상은 폐결핵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도쿄제국대학부속병원으로 이송됐다. 1937년 4월 17일 새벽 4시 이상은 26년7개월의 삶을 이국의 한 병원에서 끝냈다. '사과한알이떨어졌다. 지구는부서질정도로아팠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시 〈최후〉) 지구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의 작용으로 사과 한 알이 떨어지듯 시인의 '최후'는 그렇게 덧없이 다가왔다. 천재 시인도 이 종말의 세기, 단절의 세기, 파국의 세기에서 오는 인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상이 죽기 하루 전 부친 김연창과 조모가 사망했다. 이상이 위독하다는 급보를 받고 현해탄을 건너온 변동림에 의해 유해는 화장되어 서울 미아리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조선문단은 이 천재 시인의 죽음을 애도했는데, 특히 김기림과 박태원 등이 이상의 때이른 죽음에 비통해 했다.
이상의 운명은 병사(病死)였고, 그 삶의 형식은 위악과 파란 그리고 요절이었다. 실은 시대가 공모하여 자살에 이르게 한 억울한 죽음이었다. 아니, '자연인 김해경'은 절망이라는 흉기를 써서 '천재 시인 이상'을 암살한 것이다. 이상의 시는 여전히 비학(秘學)이나 비교(秘敎)의 경전보다 난해하다. 그 난해성은 현전(現前)을 새롭게 해석하고 당대의 낡은 문법을 넘어서서 상상하려는 자의 불가피성에 의해 정당화됐다. 이상이 남긴 작품의 총량보다 더 많은 주석(註釋)과 논의와 해석이 뒤따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30년대 모더니즘을 전위(前衛)에서 이끌던 '모던 뽀이' 이상 신화(神話)는 그가 태어난 지 백년이 되는 기점에서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
[출처] 동경에서 길을 잃다 -20100302,조선일보-|작성자 bEbRiGhT
'이 상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동림과의 짧은 결혼생활 -20100209,조선일보 (0) | 2010.05.10 |
---|---|
'조선의 로트렉' 구본웅과 동행 -20100223,조선일보 (0) | 2010.05.10 |
李箱의 마지막 행적 -2010.04.17,조선일보 (0) | 2010.05.10 |
천재 이상, 식민지 시절 도쿄서 뭘 생각했나 -20100417,중앙일보 (0) | 2010.05.10 |
[21세기,다시읽는 이상]<4>분열,자아의 불안을 응시하다-20100421,동아일보 (0) | 2010.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