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초 영랑초등학교 29회 친구들>님의 카페에서
물 속의 집 / 이상국
그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세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 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고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마을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마리 새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 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설악이 물 속의 집 뜨락에 아름다운 놀빛을 두고 가거나
산그림자 속 화암사 중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 늦게 돌아가는 날이면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물 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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