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오다 가다 / 김억

자크라캉 2009. 12. 7. 18:08

사진<중년의 사랑 그리고 행복>님의 카페에서

 

다 가다 / 김억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뒷산은 청청(靑靑)
풀 잎사귀 푸르고
앞바단 중중(重重)
흰 거품 밀려 든다.

산새는 죄죄
제 흥(興)을 노래하고
바다엔 흰 돛
옛 길을 찾노란다.

자다 깨다 꿈에서
만난 이라고
그만 잊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십 리 포구(十里浦口) 산 너먼
그대 사는 곳
송이송이 살구꽃
바람과 논다.

수로 천 리(水路千里) 먼먼 길
왜 온 줄 아나.
예전 놀던 그대를
못 잊어 왔네.

 

- 조선시단 창간호(1929.11)

 

 

[핵심정리]

 

1. 형식 : 6연의 정형시
2. 경향 : 감상적, 민요적
3. 표현상 특징
    1) 7·5조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2) 2연과 3연은 5·7조로 변형을 이루고 있다.
    3) 2연에서 '청청', '중중' 등과 같이 음악적인 리듬감을 살리고 있는 점이 이 작품의 묘미이다.
4. 제재 : 만남의 의미
5 . 주제 : 다정, 곧 정을 그리는 한국인 특유의 인정미, 잠시 인연을 가졌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
 
[시의 짜임]
 
제1연 : 만남의 소중함
제2연 : 산과 바다의 풍경
제3연 : 산새와 돛단배
제4연 : 만남의 소중함
제5연 : 선명한 그리움
제6연 : 그대를 찾은 까닭
 
[감상의 길잡이]
 
그리움을 노래한 시들은 대개 침울한 분위기를 띠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그리움이 클수록 안타까움과 괴로움도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노래하는 그리움의 대상은 그다지 길지 않은 동안 인연을 가졌던 어떤 사람입니다. 그는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이며, '자다 깨다 꿈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시적 화자에게는 그에 대한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그의 생각이 떠오르고, '십리 포구 산 너머' 그대가 사는 곳이 눈앞에 어립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인연은 짧은 동안의 것이었기에 가슴을 아프게 할 만큼 그리움이 절박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이 작품으로 하여금 경쾌한 분위기를 띠게 하는 이유입니다.

또 하나 이 작품의 분위기를 돋우는 데는 운율이 기여했습니다. 이 시는 7·5조를 둘로 나누어 각각 한 행씩을 이루도록 배열해 놓고 있습니다. 물론 2연과 3연은 7·5조로 변형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소박한 운율 속에 드러나 보이는 정서 역시 소박한 정서이네요.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를 찾아가는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에는 절박하다고 할 만한 그 어떤 정서도 배어나오지 않습니다. '옛날 놀던 그대'를 찾아가며 바라보는 자연은 서정적 자아가 흥에 겨워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할 정도입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대를 향하면서 시적 화자는 이따금식, 그대가 비록 오다 가다 만난 이라고 해도 '그저 보고 그대로 가고 말'수 없으며, '그만 앳고 그대로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군요. 그리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하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경쾌하기만 합니다.

그 경쾌함은 작품 속에 나타난 색채 대비로 더욱 선명해지네요. 즉 푸른색(풀잎사귀)과 흰색(흰거품 흰돛)의 선명한 대조가 작품 전체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때문에 시적 자아가 호소하는 그리움을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작가에 대하여]
 
무도회와 민요의 시인 김억. 그는 1910년대 중엽부터 동경 유학생 기관지인 '학지광'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프랑스 상징파 시를 소개하고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를 내어서 초기 근대시 형성 과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자신은 시인으로서 그다지 큰 성공을 이루었다고 보기 어려우나, 제자인 김소월에게 상당한 영향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겠죠. 첫째 서구 상징주의 시 번역이고, 둘째 '신민요' 개척입니다. 번역 활동과 민요시의 서로 다른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걸어갔던 김억(물론 그도 훗날 적지않은 친일 행적을 남기긴 했지만)은 <폐허>에 가담했으며 곧 <창조>의 동인으로 옮겨 갔다고 합니다. 약간 소심했던 성격 탓에 문단 내에서 인간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1923년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시집인 <해파리의 노래>를 발행합니다. 이 시집은 사실상 그의 시 1기를 정리하는 기념비가 되었죠. 여기에는 훗날 김억이 주력하는 민요시와는 달리 정형률도 민요풍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 김억이 민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첫번 째 이유는 육당의 신체시가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죠. 물론 식민지 당국의 소위 문화 정책도 이에 한몫했겠지요.

시집으로 <해파리의 노래<1923)>, <봄의 노래>, <먼동이 틀 때> 등이 있습니다.

 

 

출처 : 사이버문학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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