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2008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부문 당선작]아버지의 연필 / 전영관

자크라캉 2009. 1. 6. 20:09

 

사진<땅고 아르떼(Tangoarte)>님의 카페에서

 

 

[2008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부문 당선작]

 

 

버지의 연필  / 전영관

 

풍구의 회오리가 가슴께를 후려친다
갈탄의 낭자한 선혈 사이로
피 맛을 본 강철이 달아오른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강철연필은 학력편차가 크다
몇 자의 비문만 학습한 경우가 있고
공덕문을 줄줄이 암기하는 실력파도 있다
까막눈 돌쟁이는 단지 내장된 글자들을
강철연필로 파내는 것뿐이다 
거북이나 두꺼비를 만나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환절기에는 떠나는 사람들 많다
해마다 반복되는 덕분에 그의 한문 실력도
지명이나 이름자에 두각을 나타냈다

 
담금질로 단단해지는 것은 강철뿐
돌쟁이의 가슴은 반비례로 물렁해졌다
구부리는 법을 터득한 까닭에 굽실거렸어도
칠십 평생 부러지지 않았다 그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덕분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부끄럽게 생각한 적 있다
 

아버지는 물푸레나무들과 뒷산으로 올라가
겨우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철연필들은 처음으로 주인의 이름을 새겼고
얼어붙은 산 밑 저수지에서 떵떵
망치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찬물에 손이라도 씻는지 지난 봄에는 물푸레
푸른 물이 내려오기도 했다 오늘도
녹슨 강철연필들만 벌겋게 복습 중이다

 

旌 旋 全 公 重 鉉 之 墓

 

 

 

[심사평]

 

'허허벌판에 詩匠이 되길'

 

 기술은 있되 장인정신이 없는 삶은 망해버리기 마련이다. 장인정신은 어제 써먹은 기술을 오늘 아침에 쓸모없다 버릴 줄 아는 성정머리가 있어야 좋겠다. 누가 보면 꼭 벌어먹기에 좋은 짓거리를 하는 사람 말이다. 광명의 획득은 그런 짓거리 끝에 얻어지는 것 아닐까.

 
  보자, 본심으로 넘어온 편수는 모두 160편. 단 응모자의 이름은 모두 빠져있고 응모 번호만으로 대체 되어 있다.
'섬망'외 9편이 우선 눈에 들었다. 의식과 무의식을 종횡무진 오락가락하며 쓴 정신주의 시라고 할까. 그 장대한 사유가 정진, 또 정진해서 우주의 깊이, 우주의 가락을 터득했더라면, 놀라운 대시인의 출현을 알릴 뻔 했다. 재기는 살리되, 너무 이른 이상이 되지 말고, 세계의 고전들을 탐독하여 자기화하는 노력의 대가인 이상이 되길!

 
  '빙어'외 7편이 또 눈에 들었다. '빙어'에서 노숙자의 신세를 "라면 몇 가닥 보이는 내장을 비워냈다"고 본 것이나, '동해(凍害)'에서 "내 어머니 배에 튼 자국은 더 깊어진다"라고 아름답고 섬세하게도 세필화를 그렸다. 하지만 딱히 이 당돌한 시대를 업고 갈 뜨거운 힘과 맞선 찬 지성이 동시에 보이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연필'외 8편이 가장 나중에 눈에 들었다. 음, 돌쟁이 생부의 생사를 잘도나 그리고 있군. 돌 속의 부처를 석공이 불러낸다고 않던가, 돌쟁이의 강철연필이 죽음을 펄철 살아있는 돌 육신으로 불러냈구나!

 
  모든 시인은 강철연필로 죽음을 불러내는지 모른다. 하여, 가장 믿음직한 시인을 세상에 내보낸다. '새로 쓰는 계곡(史)'의 "밤꽃이 허연 눈썹으로 바라보던 식구들 저녁이 있다" 등등 또 다른 시편들이 믿음을 더했다.
혹,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허허벌판 시장(詩匠)이 되길!

 

 [심사 : 서정춘 시인]

 

 

 

[당선 소감]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아버지는 일제시대 소학교만 마치셨다. 내남없이 어렵던 시절 우리라고 별 수 있었겠나. 아들 하나 딸 셋 데리고 부모님은 서울로 올라오셨다. 서울서 얻은 막내딸까지 일남사녀 오르르 머리맡에 요강 놓고 자랐다. 학식 없고 기술 없이 자식 가르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천수답만도 못한 일이다. 평생을 할석공(割石工)으로 보내신 아버지는 저녁마다 정을 벼리셨다. 강철을 부러지지 않을 만큼 담금질하는 기술은 숱한 체험에서 얻으셨으리라. 이 나이 되도록 아버지 음덕에 얹혀산다. 아직 아버지의 그것만큼 적절한 강도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남기신 연필을 다 쓰기 전에 온전한 내 연필을 마련하겠다. 그 연필로 세상의 각질을 벗겨내고 싶다. 이 몸의 살과 뼈를 아버지가 주셨다면 내 시의 살과 뼈는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주신 것이니 친부(親父)와 다름 아니다. 부자(父子)의 예를 갖춰 올바르게 쓰겠다는 다짐 올린다.
  나무가 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 시 또한 현실로부터 완전한 분리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사소한 존재들과 내 이웃의 안색도 살피겠다던 다짐을 이 기회에 다시 명토 박는다. 주변의 사물과 정황들은 진심이 아니면 절대 속내를 털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네들과의 대화가 캄캄했던 적 많았다. 이 또한 내 귀의 깊이가 모자란 탓이고 자상한 눈길을 유지하지 않은 까닭이다. 지금까지 시 비슷한 조각글을 쓰면서 가족의 온기를 내다팔고 부모의 고단함을 손쉽게 우려먹었다. 퇴근 후 저녁마다 식탁에 앉아 모니터만 보는 남편이 뭐 그리 살가웠겠는가. 어린것들 딴에는 주말마다 시집만 파고 있는 아빠가 얼마나 서운했겠는가. 이참에 고맙다는 마음 전한다. 어머니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도 없을 거라 확신한다. 짐짓 모른 척, 커피 한 잔 놔주고 자리 피하던 아내에게 오늘의 맨 앞자리를 양보하겠다.

 
  문우들과 함께하던 온라인 토론과 삼겹살집 소주가 떠오른다. 유려한 시를 보며 질투하기도 했고 한 달 가까이 고민한 습작시가 성토당할 땐 늪보다 깊은 절망에 빠졌었다. 이제 오늘을 기준으로 쉼표 하나 찍는다. 잠시 숨을 다듬고 그들과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겠다. 장성혜, 정현옥, 서채영, 김옥전, 박기동, 서동인, 김은경, 노운미 등등 우리 공부방 시인들에게 따뜻한 저녁 한 끼 대접하련다. 내게는 시형(詩兄) 다름 아닌 유종인 시인과도 새벽까지 할 이야기가 많다. 소설가 윤정모 선생님을 비롯한 윤사모 식구들께도 짐벙지게 한 상 마련해야겠다. 향우회처럼 이물 없는 수필드림팀 필진들과도 환한 웃음을 나눌 참이다. 아울러 여기까지 참고 와준 내 자신도 격려한다. 습작 1,000편을 채우기 전에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일련번호 528번째에 이렇게 큰 인연을 만났다. 1,000편까지 300편 남았다. 두렵다고 하진 않겠다. 앞길을 장담하기보다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새긴다. 두루 모든 분들께 고맙고 심사위원 선생님께 다시 한 번 예를 올린다. 올 가을은 짧았지만 내겐 참으로 깊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뼈를 깎겠다.

 

 

전영관 시인
충남 청양 출생.

2007 토지문학상 수상.

2008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