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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동양일보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휠체어 달리기 / 김봉래

자크라캉 2009. 1. 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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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름답고 행복한 동행>님의 카페에서

 

[15회 동양일보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체어 달리기 / 김봉래

 

신체의 일부가 되기 전에는 단지 고철에 불과 했지만
운명처럼 필요와 용도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쇠붙이,


어쩌면 저 두 개의 바퀴는 생전에 불도저였었는지도 몰라
그저 보행 보조기로서의 역할만 담당하기에는
넘쳐나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어
저렇게 속도를 즐기고 있으니까 말이야


강력하게 추진하는 좌우의 은빛 휠 위로
터질듯 솟아오른 이두박근이 태양을 향해 꿈틀 거리고
질주하는 전차의 엔진은 무리한 펌프질에 목이 타지만
이 정도의 트랙은 사막도 아니지


치기어린 한 때, 경계 지은 하얀 선을 무심히 넘나들다
과속트럭에게 두 다리를 모두 주고난 후에도
규칙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서였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을 허비 해야만 했어.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져 코너를 돌다
다시 힘차게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바퀴들에게
생의 고비가 직선의 레인 일 수는 없는 거라고 위로해 봤자
그것은 아주 궁색하고 초라한 구호품 정도인 게야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력을 다하는 나머지 생 앞에
순위는 그저 순위일 뿐 각 주자의 결승점은 각자에게 있는 것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기록과의 경쟁이지


신체의 일부가 되어 필요와 용도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운명 같은 저 쇠붙이.

 

 

 

[심사평]

 

  두다리를 잃고 난 다음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이채  
  

  지난해의 응모작(453편) 보다 금년에는 응모작(623편)이 많고 예년에 비하여 수준작들이 보다 많은 반면 상투적이고 유행성 짙은 작품이 줄어든 점은 이를 극복하려는 시대정신의 발로라고 하겠다.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루었던 작품 중에서 최종심까지 남은 작품으로는 윤이산의 ‘으음, 고등어’와 이월란의 ‘수선집 여자’그리고 김봉래의 ‘휠체어 달리기’란 작품이다.
  윤이산의 ‘으음, 고등어’란 작품은 고등어를 통하여 삶의 시점에서 가족의 의미를 복원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평이한 일상어로 언어의 조직이 처져있다. 이월란의 ‘수선집 여자’에서 바세도우씨병에 걸린 수선소집 여자의 삶을 오밀조밀하게 내보이고 있다. 할 말을 다해야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의 절제에 유념하기를 바란다.

  당선작으로 뽑힌 김봉래의 ‘휠체어 달리기’란 시는 치기어린 한 때 경계 지은 햐얀 선을 무심히 넘나들다 두 다리를 잃고 난 다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이채롭다. 신체의 일부가 되기 전에는 단지 고철에 불과 했지만/운명처럼 필요와 용도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진 쇠붙이. // 강력하게 추진하는 좌우의 은빛 휠 위로/ 터질듯 솟아오른 이두박근이 태양을 향해 꿈틀 거리고 그 때 보았던 세상을 감지하는 또 하나의 눈을 갖고 있다.
  쇠붙이에 불과했던 휠 위로 질주하는 발이 되었음 그 자체가 삶을 일깨워 냄이다. 자기 언어로 엮어내는 능력을 보았다. 휠체어가 신체의 일부가 되어 없어서는 안 될 운명 같은 쇠붙이로 일깨워 내고 있다. 앞으로 사물을 다룸에 있어 ‘시는 언어예술이면서 언어를 초월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기 바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리며 계속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정연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