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 / 이원

자크라캉 2008. 10. 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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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제동 성당 쉼터>님의 카페에서

 

궁으로 돌아가려 한다 /  이원

 

 

여자는 침대에 모로 누워 젖이  불은 왼쪽  유방을 꺼

낸다 달빛은 유방이 아닌 여자의 얼굴을 푸딩처럼 똑

똑 떠먹는다 그 자리에 고이는 시간이 순식간에 검어

진다 갓난아기는 머리를 들이밀고  젖을 빤다 아기의

입과 여자의 시간이 동시에  초침처럼 오글거린다 쫄

깃거린다 얼룩덜룩한 고양이 두  마리는 침대 아래로

늘어진 여자의 그림자를 핥는다 아기는  새빨개진 얼

굴로 젖을 빨아댄다 제가 두고 온 어둠을 미끌미끌한

길을 빨아댄다 아기는 제가 알몸으로  빠져나온 자궁

으로 돌아가려 한다 적막하고 환한 물속의 집으로 돌

아가려한다 입가로 젖이  흘러넘친다  비린내가 담쟁

이덩굴처럼 아기의 얼굴을  뒤덮는다  비린내는 오들

오들 떤다 여자는 오른손으로 아기의 연한  머리통을

감싼다 매장의 시간에 익숙한 여자의  손안에서 아기

의 머리통이 녹는다 순식간에 상한다  검어진다 아기

는 필사적으로 젖을 빤다 여자의 몸속에 켜켜로 쌓여

있던 울음과 시간이 끌려 올라온다  시간도 태아처럼

머리부터 빠져나온다 아기는 썩지 못한 제 울음을 제

시간을 삼킨다 아기의 숨통은 점점  더 부풀어오르는

유방 속에 묻힌다 여자의  몸이  어느 생이 이미 벗어

놓은 허물처럼 주글주글해진다  달빛을  끌고 나가는

어둠에서 흙냄새가 난다 여자의 질긴  가죽이 아기의

연한 살에 랩처럼 달라붙는다 아기의  그림자가 오그

라든다 뜨거운 물이 터져나온다 토막 난 고양이 울음

이 여자의 온몸에 젖꼭지로 달라붙는다 길은 창 아래

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다 머리가 다 녹아버린 아기의

입이 파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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