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

향수 / 정지용

자크라캉 2008. 9. 19. 09:25

 

 

         사진<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님의 블로그에서

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시평]

고향이란 인간의 원초적(原初的) 생(生)의 뿌리이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고난과 시련의 현실에 놓여 있을 때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과거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 시는 정지용이 일본 동지사(同志社) 대학 재학 시절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국 땅에서 낯선 환경 속에 생활하며 유년 시절에 겪은 여러 추억과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이 시를 쓰게 한 배경이라 할 것이다. 토속적인 어휘와 창가조(唱歌調)의 구성 형태를 취하면서도 표현에 있어 감각적 심상을 사용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감정의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모든 정서를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처리한 것은 이 시가 한국 시사(詩史)에 있어 한 단계 발전했음을 보여 준다. 정지용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지만 시 <향수>의 고향 배경은 외갓집이 있었던 충북 옥산면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옥천’에는 넓은 벌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시 <향수>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고향의 근원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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