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타란을 사모하는 모임>님들의 카페에서
오발탄 / 신정민
203호에 이사온 그는 총잡이다
그가 쓰는 권총의 방아쇠는
손가락이 아닌 구둣발로 잡아당긴다
문 열어! 탕, 탕, 탕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쏜 총성은
그의 마누라 귀에만 날아가 박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출입구를 같이 쓰는 열 세대의 모든 귀에 날아가 박힌다
귀를 관통한 총알은
벽에 부딪혀 어지럽게 튕겨나와
아이들의 인형을 쓰러뜨리고
거울을 깨부수고
담뱃재 수북한 재떨이를 날려버릴 것이다
왜 안 열어, 빨리 열란 말이야! 탕, 탕, 탕
이불을 뒤집어쓰고
벽을 향해 돌아눕고
꾸던 꿈을 마저 꾸기 위해 눈을 감는 밤
시끄럽다고, 잠 좀 자자고
방아쇠가 입에 달린 105호 남자, 한 소리 지를 법도 한데
어째 조용하기만 한 밤
총성과 총성사이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깊고 고요한지
드나드는 사람 뻔한 비둘기 맨션
한 번도 본적 없는 203호 사람들
제발 열어, 열란 말이야! 탕, 탕, 탕
들리지 않는 새벽의 총성에
끝내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신정민 시인]
* `61년 전북 전주 출생
* `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詩 부문 당선
* `08년 시집 <꽃들이 딸꾹> , 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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